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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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안부安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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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민 박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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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곳곳의 안부가 걱정된다
대서양과 카리브해 바라보는 베네수엘라
독재와 인권 탄압, 마약 밀매, 국제폭력조직이라지만
무력으로 전격 체포·압송된 한 나라의 대통령
거대하게 입 벌린 초강대국의 위세인가
미러 중, 유럽 사이에 끼어
북극권의 새로운 해상 무역로로 진화한
덴마크의 자치령 그린란드
눈 뜨지 않은 풍부한 천연자원이 출렁이는 곳
국가안보를 구실로
강제 매입이라는 검은 꿈이 그물처럼 입 벌린다
평화와 안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강대국의 솟구치는 식욕에 목덜미 물리면
애완견으로 꼬리 내리는 게 힘의 논리인가
패권의 위력에 약소국의 안부가 위태롭다
러시아 때문에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이
중국 때문에 타이완이
인도 때문에 파키스탄이
불안하게 꼬리 내려야 하니
동맹의 딜레마 속에 불안해지는 한국의 안위安危
산업화 세력으로 경제발전 이루고
민주화 세력으로 인간 존엄 찾았으니
서로 싸울 게 아니라
이젠 동반자로 함께 나아갈 때
더 멀리 더 힘차게
새로운 대항해로 빛날 수 있을 텐데
인권이 존중받고
공인된 국제법질서가 제대로 지켜져
어디든 안전하고 평화로운 지구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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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라는 낮음, 그 낮음이 세우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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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세계정치의 전면으로 나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대신 가장 사적인 인사를 꺼낸다. “안부.”
정치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의 언어로 시작하는 순간, 이 작품은 이미 하나의 태도를 선택하였다.
상대를 분석하기 전에, 먼저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겠다는 태도이다.
'안부'는 그 인정이 없으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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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장관의 시라는 사실은 이 작품을 더 예민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시는 ‘정치적 유리함’의 자리에서 말하지 않는다.
경험을 과시하지 않고, 결론을 서두르지도 않는다.
권력의 언어를 아는 사람이
오히려 언어를 낮추어 묻는 방식이다.
바로 그 절제가 이 작품의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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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와 그린란드, 우크라이나와 타이완으로 이어지는 배치는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구조의 제시이다.
각 국가는 연민의 대상이 아니다.
패권이 작동하는 지점으로 놓인다.
설명 대신 긴장을 배치하는 이 선택은
정보를 아는 대신, 생각을 감당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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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대목에서 이 시의 현대성은 또렷해진다.
북극항로와 자원, 안보라는 국제정치의 핵심이
“강제 매입이라는 검은 꿈”으로 수렴된다.
이 대목에서 문학은 분석보다 먼저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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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비판은 고발이 아니라 윤리의 호출이다.
“애완견으로 꼬리 내리는 게 힘의 논리인가”라는 물음은
분노 대신 부끄러움을 불러낸다.
윤동주의 시정신이 그러했듯이
이 시 또한 역시 힘을 향해 외치지 않고 인간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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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과잉의 연민이 없다.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불안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조건을 그대로 둔다.
이 냉정함은 평론가의 통일문학이 통일을 다뤄온 태도와 맞닿아 있다.
통일은 구호가 아니다.
상처를 견디는 윤리의 시간이라는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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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말하는 대목에서도 이 시는 애국의 언어를 피한다.
“동맹의 딜레마”라는 표현은
국가를 위로하기보다 국가에게 질문을 던진다.
윤동주의 자기 점검의 태도,
그리고 평론가의 통일문학이 시대에 던져온 질문과 같은 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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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반의 관계로 제시하는 장면은
정치적 절충이 아니라 문명적 사유에 가깝다.
과거의 분열을 정리하지 못하면
미래의 항해도 빛날 수 없다는 인식.
“새로운 대항해”는 승리의 구호가 아니라
함께 감당해야 할 책임의 비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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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태도를 남긴다.
윤동주가 시를 윤리의 자리로 세웠다면,
평론가의 통일문학은 그 윤리를 분단의 상처 위로 옮겨
연대라는 말이 공허해지지 않도록, 언어를 지켜 왔다.
그리고 〈지구의 안부〉는
정치 이후의 언어가 어디까지 낮아질 수 있는지,
그 낮음이 어떻게 세계를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지를
조용히 증명한다.
시인이 안부를 묻는다는 것은,
세계와 인간을 끝내 포기하지 않겠다는
시인의 포용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