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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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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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민. 박철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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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의 퍼즐, 판도라
인간에게 불을 선물한 죄로
독수리에게 간을 파 먹히는 프로메테우스
풀리지 않는 제우스의 시퍼런 분노의 불길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뻗어간다
둘을 짝지어 주려 신들이 만든 첫 여자, 판도라
지혜 대신 천 짜는 기술만 가르쳐 준 아테나
마성적인 매력을 불어넣어 준 아프로디테
헤라가 의심과 호기심까지 채워준 판도라
황금 상자 선물과 함께
그녀를 아내로 맞은 동생 에피메테우스
궁금증을 못 참아 황금 상자 열어본 판도라
온갖 악과 부정한 것이 빠져나와 급히 닫는다
상자 속 희망만 못 나왔다는 안타까운 신화
재앙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 품고 용기 내라는
짝지어 자손 낳아 잘 부양하라는
한순간 평화 깬 아수라장 속에서
신과 인간, 운명의 경계 그은 신神 중의 신 제우스
놀랍게도 원하던 퍼즐대로 맞추다니
호기심도 의심도 방향키 잃고 수위 넘으면
신화 밖 인류사까지 뒤흔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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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어떻게 사유의 현재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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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판도라 신화를 다시 들려주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 위에 오늘의 질문을 겹쳐 놓는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신화는 장식이 아니라 사유의 도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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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출발점은 프로메테우스의 형벌이다.
불을 건넨 행위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벌의 지속성이다.
간은 매일 다시 살아나고, 형벌은 끝나지 않는다.
이 장면은 정의의 실현이라기보다
권력이 분노를 유지하는 방식에 가깝다.
벌은 죄를 교정하기보다
체제를 오래 지속시키는 장치로 작동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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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의 분노가 에피메테우스로 이동하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분노는 한 대상에 고정되지 않는다.
직접 책임지지 않은 채
다음 대상에게 전가되며 힘을 유지한다.
권력은 늘 이렇게 움직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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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는 이 시에서 한 개인이 아니다.
여성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상은 신들이 설계한 존재다.
지혜는 주어지지 않고
기술과 매력, 의심과 호기심만 채워진다.
이 설정은 특정 개인을 비난하기보다
사유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구조의 위험성을 겨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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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상자는 선물이다.
그러나 열어보는 순간 재앙이 된다.
중요한 것은 열지 말라는 금기가
오히려 열림을 유도한다는 점이다.
이 시는 재앙이 외부에서 침입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재앙은
선택이라는 얼굴을 하고 내부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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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속에 희망만 남았다는 대목에서도
이 시는 위안을 강요하지 않는다.
희망은 구원의 약속이 아니라
재앙 이후에도 살아가야 하는 인간에게 남겨진
마지막 감정에 가깝다.
그래서 이 희망은 밝지 않고,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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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에서 제우스는 놀라워한다.
“원하던 퍼즐대로 맞추다니.”
이 말은 실패의 탄식이 아니다.
예측이 어긋나지 않았다는 확인이다.
신은 인간의 선택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 선택은 끝내 신의 설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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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신화 밖 인류사까지 뒤흔들지 않을까”라는 물음은
이미 현재형이다.
신화는 끝났지만
그 구조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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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민 박철언 시인의 「제우스의 퍼즐, 판도라」를 읽으며
나는 판도라보다 제우스가 더 두려웠다.
그는 분노하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할지,
호기심이 어디까지 나아갈지,
그 결과를 어떻게 감당하게 될지까지
제우스의 퍼즐은 처음부터 어긋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놀라움은 실패의 탄식이 아니라
예측이 정확했음을 확인하는 냉정한 감정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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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신화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반복되는 구조가 된다.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우리 앞에 놓여 있고,
혹은 이미 열려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선택하고 있다고 믿지만
그 선택이 어디까지 자유로운지는 끝내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작품은 쉽게 닫히지 않는다.
사유가 멈추지 않는 한,
퍼즐은 지금도 계속 맞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화는 끝났지만
제우스의 퍼즐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