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문학박사 정근옥 시인 ~강마을 새들의 귀향》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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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마을 새들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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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옥 시인


샛강 강둑에 저녁 안개가 숨 고르면

들창 너머 철새 한 마리,

사립문 활짝 열고 툇마루에 나를 앉힌다/


별들이 말없이 돌아가는 도솔천 하늘,

오랜 인고의 마음 끝에

검푸른 우주 속에 별빛 하나 남기고 간다


긴 겨울의 강물을 혼자 건너온 새들,

흰 그림자만 길게 남아, 물결에 흔들린다/

눈물만큼 자란 고독이 삶의 등에 올라탄다


풍류의 달빛 흐르는 주막, 막걸리 한 사발,

그리움 한 잔 마시며 목청껏 노랠 부른다/

서산의 두견이도 설움에 겨워 가슴을 들먹인다


까만 어둠 속에 떨며 새벽을 기다리던 새,

앞산 눈썹 언저리 샛별을 바라보며/

세사의 바람 딛고 고목 위에 둥지를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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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너는 존재의 귀향


〈강마을 새들의 귀향〉

정근옥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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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은 공간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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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말하는 귀향은 단순한 회귀나 복귀가 아니다.

정근옥의 시에서 귀향은 돌아오는 행위가 아니라, 버텨온 시간의 결실이다.

새들은 강마을로 돌아오지만, 그 여정은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삶을 통과한 존재의 이동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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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첫 장면에서 저녁 안개는 ‘숨을 고른다’.

이 표현은 자연 묘사에 머물지 않고, 삶이 잠시 멈춰 서는 호흡의 순간을 만든다.

이때 철새는 관찰의 대상이 아니다.

사립문을 열고 화자를 툇마루에 앉히는 주체로 등장한다.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인간을 맞이하는 장면이다.

이 전도된 시선은 이 시 전체가 지닌 윤리적 태도를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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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천의 하늘 — 불교적 시간의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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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이 말없이 돌아가는 도솔천 하늘”이라는 구절은 이 시의 정신적 중심을 이룬다.

도솔천은 불교적 상상력 속에서 기다림과 유예, 다시 태어남의 시간을 품은 공간이다.

이 하늘 아래서 별들은 말하지 않는다.

설명하지도, 증명하지도 않는다. 다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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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옥 시인의 시 세계에서 시간은 직선이 아니다.

별은 사라지지 않고 ‘남기고 간다’.

그것도 “검푸른 우주 속에 별빛 하나”만을.

이 절제는 이 시가 지닌 윤리의 형식이다.

많이 말하지 않고, 많이 남기지 않는다.

다만 살아온 시간만큼의 빛만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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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강을 건너는 새 — 고독의 육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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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연에서 시는 존재의 무게를 정면으로 다룬다.

“긴 겨울의 강물을 혼자 건너온 새들”이라는 구절에는 집단의 이미지와 철저한 고독이 동시에 놓여 있다.

새들은 복수형이지만, 강을 건너는 행위는 언제나 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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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만큼 자란 고독이 삶의 등에 올라탄다”는 표현은

고독을 감정이 아니라 신체적 무게로 전환시킨다.

고독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짊어지는 것이다.

이때 고독은 병리도, 비극도 아니다.

삶이 살아 있었음을 증명하는 흔적이며, 성장의 또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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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의 풍류 — 비탄을 노래로 건너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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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연에서 시는 뜻밖의 공간으로 이동한다.

주막, 막걸리, 노래, 두견이.

이 장면은 고통을 지우지 않는다.

대신 고통을 공동의 노래로 건너게 하는 전통적 풍류의 공간을 불러낸다.

그리움은 마시는 것이 되고, 설움은 울음이 아니라 노래가 된다.

두견이의 울음은 개인의 비탄을 자연의 음성으로 확장시킨다.

정근옥 시인의 시는 고통을 극복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고통이 자연과 인간 사이를 오가는 리듬이 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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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기다리는 존재 — 정착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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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에서 새는 다시 등장하지만, 더 이상 떠도는 존재가 아니다.

떨며 새벽을 기다리던 새는 샛별을 바라보고, 고목 위에 둥지를 튼다.

이 장면은 귀향의 완성이다.

중요한 것은 둥지가 ‘새것’이 아니라 ‘고목’ 위에 있다는 점이다.

이 시는 새로움을 욕망하지 않는다.

오래된 것 위에 조심스럽게 삶을 얹는다.

“세사의 바람을 딛고 선다”는 표현에는

세계와의 타협이 아니라 공존을 선택한 존재의 태도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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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서정, 오래 남는 시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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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마을 새들의 귀향〉은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나 그 울림은 깊다.

이 시에는 과잉이 없다.

비장함도, 장광설도 없다.

대신 버텨온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침묵의 서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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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옥 시인의 시는 자연을 배경으로 삼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 시간과 고독, 노래와 침묵을 같은 평면 위에 올려놓는다.

그 평면 위에서 독자는 더 이상 묻지 않게 된다.

대신 조용히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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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어디까지 건너왔는가.


이 시가 오래 남게 되는 이유는

귀향을 말하면서도 도착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의 강마을 어딘가에서

새들이 돌아오듯이

삶이 잠시 호흡을 고를 수 있기를

조용히 허락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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