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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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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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CAR-T 희망의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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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억 원의 벽을 넘어, 500만 원의 희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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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T, 생명을 가격에서 해방시키다
한때 5억 원이었다.
한 사람의 생명을 붙잡는 값이
집 한 채 값과 맞먹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의료비’라 불렀다.
그러나 그것은
비용이 아니라
벽이었다.
넘을 수 없는 벽,
부모의 가슴을 먼저 무너뜨리는 숫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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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T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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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면역세포를 꺼내
다시 훈련시키고,
암세포만을 기억하도록 설계해
몸속으로 돌려보내는 살아 있는 약.
칼도 아니고
독도 아닌,
생명이 생명을 구하는 방식이다.
인류 의학이 오래 꿈꾸어온
가장 인간적인 치료법이다.
기적에 가까운 완치 사례가 이어졌고
사형선고 같던 혈액암 진단이
‘다시 살아볼 수 있다’는 문장으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치료를 포기해야 했다.
돈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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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있었지만, 모두의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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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상용 CAR-T 치료제 킴리아 (Kymriah)를 내놓은 노바티스는 분명 의학사의 문을 새로 열었다.
재발한 백혈병 아이들이
수치상 ‘완전 관해’ 판정을 받았다.
죽음을 준비하던 가족이
다시 내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아이,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는 시간,
퇴원 수속을 밟는 작은 발걸음.
그 장면들은
어떤 영화보다 뜨거웠다.
하지만 그 기적의 입구에는
항상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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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억 원.
숫자가 먼저 사람을 쓰러뜨렸다
병보다 먼저 마주하는 것은
감당하기 힘든 거액이었다.
치료는 희망이었지만,
동시에 한 가정을 무너뜨릴 만큼 무거운 숫자였다.
치료를 선택하는 순간
집을 팔고, 빚을 지고,
가족의 미래를 저당 잡혀야 했다.
“살릴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의학이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그것을 우리는 과연 진보라 부를 수 있을까.
생명을 구하는 기술이
생계를 파괴한다면
그건 기적이 아니라 또 다른 절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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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격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최근
25세 이하 혈액암 환자에게
CAR-T 치료를 500만 원 수준으로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소식은
단순한 ‘할인’이 아니다.
나는 이것을
의료의 방향이 제자리를 찾은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이
다시 생명답게
대접받기 시작한 순간.
이제 부모는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아도 된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치료합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한 문장의 변화가
얼마나 많은 밤을 살려낼지
우리는 아직 다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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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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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은 늘 진보해 왔다.
그러나 진짜 진보는
기계가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
더 빠른 약,
더 정교한 장비,
더 복잡한 유전자 기술도 중요하다.
하지만
한 아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 마음이 없다면
모든 기술은 결국 산업에 불과하다.
나는 병원을
가끔 작은 문학관처럼 느낀다.
거기에는
삶과 죽음이 가장 맨몸으로 서 있고,
인간의 본질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다.
주사 한 번이
한 가족의 시간을 되돌리고,
의사의 한마디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다.
그 장면은
어떤 시보다 깊고
어떤 소설보다 진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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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이 내려간 것이 아니라, 존엄이 올라간 것이다
5억 원에서 500만 원으로.
그래프만 보면
숫자의 하락일 뿐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한 아이가 다시 운동장을 달리는 일이고,
부모가 처음으로 편히 잠드는 밤이며,
가족이 다시 ‘내년’을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나는 이것을
‘가격 인하’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이것은
존엄의 회복이다.
생명을
돈보다 먼저 두겠다는
사회의 다짐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다음 질문
CAR-T는 시작일 뿐이다.
다른 항암제,
다른 희귀 질환 치료,
다른 생명 기술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누가 치료받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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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이
“얼마를 낼 수 있는가.”로 바뀌는 순간
의료는 다시 길을 잃는다.
기술은 앞으로 더 발전하겠지만
그 속도가 인간의 양심보다 빨라져서는 안 된다.
의학은
정밀해질수록
더 따뜻해져야 한다.
나는 이렇게 믿는다
언젠가
‘꿈의 치료제’라는 말이
특권이 아니라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기본권으로 모든 인류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그날을 꿈꾼다
아이들이
치료비 걱정 없이 병원 문을 나서고,
부모가
눈물 대신 웃음으로 퇴원 수속을 밟는 날이
당연해졌다.
그것이 오늘의 기적이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조용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의학은 결국
사람을 향해 진화했다고.
CAR-T는
그 길 위에 놓인
작지만 가장 밝은 별 하나였다고.
박성진
문화평론가
“한 사회의 품격은
얼마나 많은 생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