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김석인 시인 ~원래 한 몸이었는데》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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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인 시인


원래 한 몸이었는데


손님이 왔다

정성껏 차린 국 위에

머리카락 한 올


식탁이 뒤집히고

불결이라는 말이

소금처럼 뿌려질 때


주방장이 고개를 숙이며 웃는다

아휴, 죄송합니다

그렇게 찾아도 없더니만


이리도 귀한 제 애장품을

손님께서 먼저 발견해 주셨네요

덕분에 오늘은

분실물이 돌아왔습니다


하하하,

원래 한 몸이었거든요


몸에 있을 땐 사랑이고

국에 있으면 죄가 되는 것

그래도 오늘만큼은

머리카락도 사과도

웃음으로 씻겨 내려간다


세상에는

치울 수 없는 불결함보다

품어낼 수 있는 여유가

더 귀하다는 것을

국이 다 식은 뒤에야

모두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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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문학 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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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아주 사소한 사건 하나에서 출발한다.

국 위에 떠 있는 머리카락 한 올.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일상의 불쾌함이다. 그러나 시는 그 작은 불편을 단순한 위생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순간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쉽게 타인을 ‘더럽다’고 규정하는 존재인가를 조용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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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이 뒤집히고 / 불결이라는 말이 / 소금처럼 뿌려질 때’라는 구절은 특히 인상적이다. 소금은 음식을 살리는 재료이지만, 여기서는 혐오를 퍼뜨리는 가루가 된다.

말 한마디가 상황을 더 짜게, 더 쓰게 만든다.

우리는 종종 사실보다 말의 톤으로 더 큰 상처를 만든다.

이 장면에서 이미 이 시는 세태 비판의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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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장의 태도는 예상과 다르다. 사과하고 변명하는 대신, 그는 웃으며 농담을 건넨다. ‘제 애장품을 먼저 발견해 주셨네요.’ 이 말은 위기 모면용 유머 같으면서도,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풀어놓는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상황을 비틀어 긴장을 낮춘다. 시는 이 역설적인 태도에서 인간적인 온기를 길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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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을 ‘분실물’이라 부르는 발상은 사물의 위치를 바꾸는 언어의 힘을 보여준다. 더러움이던 것이 ‘찾아낸 물건’이 된다. 같은 대상이 이름 하나로 달라진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늘 말과 관념을 덧씌워 해석한다.

이 시는 그 인식의 구조를 슬며시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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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한 몸이었거든요’라는 한마디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몸에 붙어 있을 때는 아무 문제없던 것이, 떨어지는 순간 혐오의 대상이 된다. 사랑과 죄가 경계 하나로 갈린다. 이는 머리카락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인간관계의 이야기다.

내 안에 있을 때는 이해되고, 밖으로 나오면 배척되는 것들. 우리는 그렇게 타인을 판단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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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미덕은 설교하지 않는 데 있다.

세태 비판을 하면서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웃음으로 풀어낸다. ‘하하하’라는 짧은 웃음은 자조이면서 화해다.

세상을 꾸짖기보다, 조금 더 둥글게 돌아가자는 제안처럼 들린다. 그 여유가 오히려 더 깊이 마음을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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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도 사과도 / 웃음으로 씻겨 내려간다’는 대목에서는 정화의 방식이 바뀐다.

물이나 소독제가 아니라 웃음이다.

관계를 회복하는 힘은 청결이 아니라 태도라는 사실을 시는 말한다. 깨끗함보다 따뜻함이 먼저라는 윤리가 은근히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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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은 이 작품을 단순한 해프닝에서 삶의 비유로 확장한다. ‘치울 수 없는 불결함’보다 ‘품어낼 수 있는 여유’가 귀하다는 깨달음. 세상에는 완벽한 청결도, 완전한 무결도 없다.

결국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흠을 덮어주는 마음의 크기다.

시는 그 소박한 진실을 식어버린 국 한 그릇 위에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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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작품은 생활 시이면서 동시에 세태문학이다. 작은 부엌 풍경 속에서 인간 사회의 초상을 읽어낸다.

예민함 대신 너그러움, 분노 대신 농담, 배척 대신 포용. 그 태도가 오늘의 세계에 더 필요하다고, 시는 조용히 우리 식탁에 말을 건넨다.

읽고 나면 괜히 마음이 느슨해진다.

그것이 시인이 건네는 가장 따뜻한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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