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다정 이인애 시인 ~닁큼》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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닁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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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 이인애


강언덕을 흘러가는 구름처럼

무념무상, 무심으로

세상을 원 없이 엿보고 싶어라


거미줄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속박 없는 자유를 찾아

마음껏 활개 치며

새처럼 훨훨 날고 싶어라


시공 속으로 유랑을 떠나리라

고통도 고독도 고뇌도 없는 곳,

따스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구름과 별과 마을과 풀꽃을

마음껏 누리고 싶어라


사랑과 자유를 온몸으로 느끼며

아낌없이 노래하리라

별이여, 사랑이여

내게로

거침없이 어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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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닁큼’이라는 한순간의 결심, 존재를 가볍게 하는 자유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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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한 단어에서 출발한다. ‘닁큼’. 짧고 투박한 이 토박이말은 설명보다 먼저 태도를 드러낸다. 머뭇거림 없이, 단번에,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상태. 이 한마디가 이미 이 작품의 세계관이며 삶의 방식이다. 화자는 오래 계산하지 않는다. 붙잡고 따지기보다, 가볍게 떠날 준비를 끝낸 사람처럼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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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연의 구름은 이 시의 첫 번째 자화상이다. ‘강언덕을 흘러가는 구름’이라는 이미지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자리에서 조용히 세상을 스쳐 가는 존재를 보여 준다. 하늘을 지배하지도, 땅에 묶이지도 않는다. ‘무념무상, 무심’이라는 불교적 어휘는 욕망을 덜어낸 마음을 드러내며, 세계를 소유하지 않고 바라보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다. 보는 자이되 붙들지 않는 자, 그것이 화자가 선택한 삶의 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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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연에서 구름은 바람으로 변한다. 구름이 ‘흐름’이라면 바람은 ‘통과’다. 특히 ‘거미줄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라는 표현은 이 시의 핵심 비유다. 세상은 수많은 관계와 이해, 욕망의 실타래로 얽혀 있지만 바람은 어디에도 붙잡히지 않는다. 화자가 꿈꾸는 자유는 도망이나 단절이 아니다. 닿되 묶이지 않는 자유, 흔적을 남기지 않는 존재 방식이다. 상처 주지 않고, 소유하지 않고, 가볍게 지나가는 삶의 투명함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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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활개 치며 / 새처럼 훨훨 날고 싶어라’에서 시의 리듬은 갑자기 환해진다. ‘훨훨’이라는 의성어는 독자의 몸까지 가볍게 만든다. 이 시는 고통을 장중하게 응시하거나 비극을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몸의 감각을 앞세운다. 자유를 관념이 아니라 움직임으로 느끼게 한다. 그래서 이 장면은 사유라기보다 숨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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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연에서 공간은 한층 넓어진다. ‘시공 속으로 유랑’한다는 말은 개인의 일상을 넘어 존재 전체를 향한 여행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가 도착하고자 하는 세계는 거창한 이상향이 아니다. ‘구름과 별과 마을과 풀꽃’이 나란히 놓인다. 우주와 마을, 별과 풀꽃이 같은 높이에서 불릴 때 삶은 위계를 잃는다. 크고 작은 것의 차별이 사라지고, 모든 존재가 따뜻하게 공존한다. 이 평등한 시선이야말로 이 작품이 품고 있는 가장 인간적인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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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고통도 고독도 고뇌도 없는 곳’이라는 반복은 인간의 실존을 조용히 건드린다. 우리는 늘 그 세 가지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시는 그것을 절규로 토해내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없는 곳’을 꿈꾼다. 절망을 확대하는 대신 소망으로 건너가는 태도. 이 절제가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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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노래한다. ‘사랑과 자유를 온몸으로 느끼며’라는 구절은 이 시의 핵심 문장이다. 자유가 머리의 결심이 아니라 몸의 감각이 되는 순간, 삶은 비로소 살아 있는 것이 된다. 노래는 존재가 스스로를 긍정하는 가장 오래된 행위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타인을 위한 과시가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한 조용한 환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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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여, 사랑이여’라는 호명은 기도와도 같다. 대상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세계 전체다. 먼 하늘과 가까운 마음을 동시에 부르며 화자는 세계와 자신 사이의 거리를 지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삶을 향해 손을 내민다. 도망치는 대신 맞아들이는 태도, 그것이 이 시가 도달한 자유의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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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닁큼」은 거창한 이념 없이도 한 인간의 삶의 태도를 또렷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다. 붙들지 않고 흘러가며, 얽히지 않고 스쳐 가며, 계산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 그 단순하고 맑은 결심이 이 한마디 토속어에 응축되어 있다. 이 시는 우리에게 오래 망설이지 말라고 말한다. 생각이 길어지기 전에, 삶을 향해 먼저 발을 내딛으라고. 지금, 바로, 언급한다.



《닁큼~ 머뭇거리지 않고 단번에 빨리. 망설임 없이 곧장 행동하는 모양을 이르는 순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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