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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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화평론
진정한 의사라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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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병의 아이를 다시 숨 쉬게 한 이범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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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병을 고치는 사람일까.
아니면 사람을 살리는 사람일까.
나는 오래도록 이 질문을 붙들고 있었다.
병을 고치는 일은 기술이지만
사람을 살리는 일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약은 처방할 수 있어도
희망은 처방전으로 쓸 수 없다.
그래서 결국
의사를 의사답게 만드는 것은
지식보다 태도이고
경력보다 양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생각을
나는 한 사람을 통해 다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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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이범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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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에 혹이 생긴 아이들이 있었다.
몸 안에서 자라난 작은 덩어리가
피의 흐름을 막고
호흡을 가늘게 만들고
삶의 시간을 빼앗아 삶을
단축시키는 희귀병.
희귀 질환이라는 말은
이상하게도 늘 차갑다.
환자가 적다는 이유로
연구도 늦고
약도 없고
결국 돌아오는 말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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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볼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그 한마디가
부모에게는 밤을 무너뜨리는 말이라는 것을
의학 교과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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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교수는
‘없다’는 대답에서 멈추지 않았다.
국내 자료가 없으면
해외 논문을 찾았다.
프랑스 학술지,
낯선 약 이름,
작은 치료 사례 하나까지
끝까지 읽고 또 읽었다.
보통이라면 참고문헌으로 지나쳤을 문장을
그는 가능성으로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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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통계를 보지만
진짜 의사는
그 숫자 사이에서 희망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번 싸움은 의사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다.
부모들까지 공식자료를 모아 들고 함께 뛰었다.
논문을 복사하고
번역을 부탁하고
약물 정보를 찾고
병원을 오가며
아이를 살릴 단서 하나라도 붙잡으려 애썼다.
진료실 안의 의사와
집에서 밤을 새우는 부모가
같은 마음으로 버틴 시간.
그 간절함이
이미 치료의 절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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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는 근거를 정리하고
행정의 문을 두드리고
신약을 들여올 길을 만들었다.
진료만 해도 벅찰 텐데
허가와 절차, 서류와 설득까지
묵묵히 감당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눈앞에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는 결국
자기 앞에 앉은 한 사람 때문에
끝까지 움직이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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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신약이 들어왔다.
숨이 돌아오고
창백하던 얼굴에 핏기가 돌고
울음 대신 웃음이 들렸다.
침대에 누워 있던 아이가
복도를 걸었다.
부모가 울고
의사가 고개를 돌려 숨을 고르던
그 순간.
나는 그 장면을
기적이라고 불러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있다.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기적이 아니라
한 의사와 부모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만든
사람의 결과라는 것을.
열다섯 명.
숫자로는 짧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열다섯 개의 인생이 있고
열다섯 개의 우주가 있다.
그 모두가
다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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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명의’라고 부르지 않겠다.
그 말은 너무 가볍다.
그는
병을 잘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방법을 찾는 사람이다.
길이 없으면 만들고
희망이 희미하면 붙들고
‘안 됩니다’ 대신
‘해봅시다’
라고
말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정한 의사다.
세상에는 의사가 많다.
그러나
부모와 같은 편에 서는 의사,
아이의 시간을 자기 일처럼 아파하는 의사,
마지막까지 희망을 내려놓지 않는 의사는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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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이범희 교수의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조용히 뜨거워진다.
아직 대한민국에
이런 의사가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다.
그리고 나는
이 문장으로 이 글을 마치고 싶다.
그 이름이 곧 우리의 희망이다.
나는 그 이름이 참 자랑스럽다.
~ 박성진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