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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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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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삼척해변 노을빛이 가슴으로 스미는 밤
바다와 시 서로 만나 라일락 향기 되었나
젊은 날 아련한 불빛 섬이 되어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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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라항의 노을빛과 시조의 내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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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밈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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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노을을 본다고 말하지 않는다.
노을은 ‘보는 대상’이 아니라 ‘스며드는 감각’으로 제시된다.
“가슴으로 스미는 밤”이라는 표현은 시적 주체가
자연을 외부에서 관조하지 않고
이미 그 안에 들어가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노을은 시간의 경계이며,
낮과 밤의 교차점이자
의식과 기억이 맞닿는 지점이다.
이 시의 출발은 풍경이 아니라
몸 안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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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내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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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해변은 구체적인 지명이지만
이 시에서 그것은 곧 해체된다.
지명은 배경으로 기능하지 않고
감각의 문턱으로 작동한다.
시조라는 형식 안에서
장소를 이렇게 빠르게 내면화하는 방식은
이 작품이 단순한 서정 묘사에 머물지 않음을 말해준다.
바다는 바깥에 있지 않고
이미 시인의 호흡 속에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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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이후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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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시 / 서로 만나 / 라일락 / 향기 되었나”
이 대목은 이 작품의 미학적 전환점이다.
라일락은 설명의 대상이 아니다.
향기는 개념이 아니라 잔상이며,
의미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감각이다.
이 시는 여기서
의미 중심의 언어를 내려놓고
감각 중심의 언어로 이동한다.
시조 형식 안에서 이런 이동은
상당히 절제된 고급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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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존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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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은 회상되지 않는다.
“불빛 섬이 / 되어 떠 / 있다”라는 표현은
젊음을 시간의 과거형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로 제시한다.
섬은 고립된 공간이지만
동시에 가장 선명한 표식이다.
떠 있다는 말은
상실이 아니라 미완을 뜻한다.
이 시에서 젊음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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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 있음과 시조의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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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시조는
균형과 정착의 미학을 지닌 형식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형식 안에
‘떠 있음’이라는 긴장을 심어 놓는다.
정박하지 않은 불빛,
아련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섬.
이 긴장은 시조를 과거로 돌리지 않고
현재형의 감각으로 유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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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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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지닌 가장 중요한 미덕은
더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라항이라는 이름도,
시인의 자의식도
의도적으로 호출되지 않는다.
이 멈춤은 결핍이 아니라
형식에 대한 깊은 신뢰다.
시조의 여백을
끝까지 믿고 간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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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후의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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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멈춘 자리에서
비로소 사유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 사유는
시를 해석하거나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시가 열어둔 감각의 통로를 따라
조심스럽게 걷는다.
평론은 여기서
설명이 아니라 동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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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과 기억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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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노을은
하루의 끝이 아니라
기억이 스스로를 정리하는 방식이다.
노을은 사라지는 빛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는 빛이다.
젊은 날 역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층위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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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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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다 읽고 나면
정라항은 더 이상 지명이 아니다.
그것은 젊은 날의 감각이
잠시 머물다 간
내면의 항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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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조는
도착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빛이 어디에 오래 머무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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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라항 돌
정라항 삼척해변 노을빛을
품어낸 바다의 수석!
인류가 다 말할 수 없이 수억 년을 견디어낸 '정라항' 수석 돌!
돌의 크기가 가로세로 작은
10센티의 돌이 무한한 사유를 품었다.
바다에서 발견한 돌 '노을빛 수석'을 바라보며 ᆢ
시인, 수집가의 안목에도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