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김도연 시인. 화가~시간》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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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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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쌓여서


내가 되었다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고통 슬픔 설움


쌓여서


커다란 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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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여서 존재가 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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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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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시간에 대해 우리가 너무도 쉽게 믿어온 말을 조용히 밀어낸다. 시간은 흐른다는 말, 지나가면 사라진다는 생각, 견디면 언젠가는 잊힌다는 기대. 이 시는 그 모든 말 앞에서 멈춰 선다. “흘러가는 / 것이 아니라”라는 짧은 부정은 단순한 문장 하나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방향 전체를 바꾸는 선언이다. 시간은 여기서 이동하지 않는다. 사라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몸과 마음에 머물며, 그대로 남는다.

이 시의 출발은 시간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시간에 대한 재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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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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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여서’라는 단어는 이 시의 중심축이자 중력이다. 쌓인다는 것은 가볍지 않다는 뜻이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시에서 시간은 소비되는 자원이 아니라 축적되는 흔적이다. 하루하루는 별것 아닌 것처럼 지나가지만, 그것들이 겹치고 눌리며 어느 순간 무게를 갖는다. 이 시는 말한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계속 쌓이고 있으며, 그 쌓임은 결국 우리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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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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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여서 / 내가 / 되었다”라는 문장은 담담하지만 깊다. 이 문장은 나라는 존재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드러낸다.

나는 어떤 결심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어떤 시간을 견뎌왔는가로 만들어진 존재다. 선택보다 앞서는 것은 통과였고, 성취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버팀이었다.

이 시에서 ‘나’는 주체이기 이전에 결과다.

시간의 결과, 남겨진 날들의 총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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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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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시간은 아름다운 기억으로 쌓이지 않는다.

그 재료는 고통, 슬픔, 설움이다. 이 세 단어는 감정의 종류가 아니라 삶의 결이다.

고통은 육체와 마음을 동시에 통과했고, 슬픔은 오래 머물렀으며, 설움은 쉽게 말해지지 못한 채 눌려왔다.

이 시는 시간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의 가장 본질적인 얼굴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살아 있다는 것은 아프다는 것과 분리될 수 없음을 이 시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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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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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극복되지도 않는다.

다만 변형된다.

울음은 굳고, 슬픔은 가라앉아 무게가 되며, 설움은 말 대신 침묵이 된다.

이 시는 치유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남아 있음의 방식을 말한다. 사라지지 못한 감정들이 어떻게 존재의 골격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변형은 실패가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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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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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라는 비유는 이 시의 결말이자 증명이다.

산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바람과 비, 압력과 침식이 오랜 시간 겹쳐야 비로소 하나의 형상을 얻는다. 이 시의 산은 위대함의 상징이 아니다.

성공이나 영광을 뜻하지도 않는다.

다만 오래 견뎌왔다는 사실,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는 기록이다. 산은 높아서가 아니라, 오래 버텼기에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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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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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설명도, 해설도, 위로도 최소화한다.

대신 여백을 남긴다. 그 여백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한 시간들이 머문다. 설명되지 않은 고통, 이름 붙일 수 없었던 날들, 혼자 삼켜야 했던 순간들이 조용히 눕는다.

이 침묵은 부족이 아니라 태도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지키는 존엄이 이 시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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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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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시간은 정말 흘러갔는가. 아니면 아직 몸 어딘가에 남아 있는가. 잊었다고 생각한 날들은 정말 사라졌는가. 이 질문은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오래 머물게 한다.

이 시는 독자를 재촉하지 않고, 각자의 시간 앞에 조용히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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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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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이 시는 하나의 풍경을 완성한다.

시간은 흘러간 것이 아니라, 쌓여서 한 사람의 지형이 되었다.

누군가의 삶은 완만한 언덕으로 남았을 것이고,

누군가의 삶은 가파른 절벽처럼 굳어 있을 것이다.

그 지형 위에는 지나온 고통의 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말하지 못한 날들,

울음을 삼키며 잠든 밤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설움들이

층층이 쌓여 하나의 산이 된다.

이 산은 자랑이 아니다.

그러나 부끄러움도 아니다.

그저 살아냈다는 사실이 만들어낸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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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크게 말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알려준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시간을 안고

여기까지 걸어왔다.

흘려보낸 것이 아니라

견뎌온 것이며,

잊은 것이 아니라

몸으로 남긴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는

저마다 다른 높이로,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이 자리에 서 있다.

그 다름마저

시간이 만들어낸

존재의 풍경임을

시는 말한다 화가이면서

시를 쓰는 김도연 화가는

시에 날개를 달아 노래가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늘 채위주시는 은총을 힘입어

늘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문학과 예술의 세계에서 예인으로 남기를 오늘도 그분께 기도하는 희망의 노래가 시마다 담겨있다.

쌓여서 시간마다 내가 아닌 하늘의 은총이라고 고백하는 모습이 예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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