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문학박사 김민정~호미곶 등대》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

김민정 시조


■□

호미곶 등대


구름 위로 치켜떴나 저 하얀 로켓의 눈

내 삶의 이정표를 바닷물에 그어놓자

십일월 늦은 가을날 하늘도 내려온다


그 하늘 잠겨 들까 중력으로 떠받친 날

지상의 나무들은 단풍으로 활활 탄다

얼마쯤 굴절되면서 멀리멀리 가는 물빛,


세상은 뉘도 몰래 앞뒤가 뒤바뀌고

그때를 놓지 않고 다가오는 태풍의 눈

바람을 잠재우느라 잠 못 드는 저 불빛,


■□

잠들지 못하는 불빛, 존재의 태도에 대하여


■□

이 시에서 호미곶 등대는 풍경으로 머물지 않는다.

관광의 배경도, 낭만의 장치도 아니다.

이 시는 등대를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잠들 수 없는 상태, 꺼질 수 없는 자리로 놓아둔다.

등대는 여기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버티고 있다.


■□

첫 연의 “하얀 로켓의 눈”은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선이라기보다

스스로를 깨어 있게 만드는 긴장에 가깝다.

눈은 본다는 기능보다 먼저

감지하고 경계하는 감각이다.

“구름 위로 치켜떴나”라는 표현은

높이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낮추지 않으려는 태도의 문제다.

이 눈은 세상을 내려다보지 않는다.

어긋남이 시작되는 순간을

남들보다 먼저 알아차리기 위해

자기 자신을 들어 올리고 있을 뿐이다.


■□

“내 삶의 이정표가 바닷물에 그어놓자”라는 행에서

이 시의 방향은 분명해진다.

이정표는 흔들리지 않는 곳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어질 것을 알면서도 맡겨지는 선택이 된다.

이 시는 안전을 설계하지 않는다.

깨어 있음이 요구하는 위험을 받아들인다.


■□

둘째 연에서 하늘은 초월의 자리를 내려온다.

중력으로 떠받쳐진 하늘 아래에서

나무들은 단풍으로 타오른다.

이 불꽃은 장식이 아니라

시간이 몸을 통과하며 남긴 흔적이다.

살아간다는 일은

아름답게 남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를 태워내는 과정임을

이 시는 담담히 받아들인다.


■□

“얼마쯤 굴절되면서 멀리멀리 가는 물빛”은

직선이 아닌 삶의 형상을 보여준다.

굴절은 실패가 아니라 방식이며

사라짐 속에서도 방향은 남는다.


■□

셋째 연에서 세계는 조용히 뒤집힌다.

태풍이 아니라 태풍의 눈이 다가온다.

가장 고요하지만 가장 위험한 중심이다.

등대는 빛을 키우지 않는다.

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그저 바람을 잠재우느라

잠들지 못한 채 자리를 지킨다.


■□

이 불빛이 무엇을 밝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멀리 닿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방향을 바꿀 때에도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는 태도다.

등대는 희망도, 구원도 아니다.

끝내 눈을 감지 않는 의식의 불빛이다.

침묵으로 책임을 버티는 존재다.


■□

등대는 어쩌면

빛이 아니라

끝내 도망치지 못한 존재들 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 불빛 앞에서

잠시 내 삶의 방향을

묻는다.

작가의 이전글박성진 《선유미~민족시인 윤동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