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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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飛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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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대 시
높은 하늘을 날아야 하는
새끼 독수리
멀리 고개를 흔들다
우연처럼 내 집으로 내려앉았다
혹여 다칠까
나는 급히 손을 뻗어
그를 붙잡았다
작은 몸이지만
부리와 발톱은 이미 날카롭고
좁은 방 안에서도
눈은 끝없는 창공을 향한다
나는 고기를 썰어 먹이고
가장 높은 곳에 세워
날갯짓을 지켜본다
날개가 단단해질 때까지
기다림을 배운다
나는 그를 키운 것일까
아니면
그가 나를 키운 것일까
■ 손을 놓는 법을 배우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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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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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다가 저는 제 손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무언가를 붙잡고 있던 손.
놓으면 떨어질까 봐, 다칠까 봐,
끝내 날아가 버릴까 봐 쉽게 펴지지 않던 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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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다칠까 / 나는 급히 손을 뻗어 / 그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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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따뜻하지만 동시에 불안합니다.
붙잡는다는 것은 보호이면서도,
어쩌면 비상을 늦추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새끼 독수리는 작지만
이미 “부리와 발톱은 날카롭고” 있습니다.
이 한 줄이 오래 남습니다.
우리는 어린 존재를 연약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 안에는 이미 자기만의 방향과 본능이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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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방 안에서도 / 눈은 끝없는 창공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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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가슴이 저립니다.
방은 보호의 공간이지만
눈은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몸은 집 안에 있지만
영혼은 하늘을 향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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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기를 썰어 먹입니다.
이 장면이 참 좋습니다.
사랑은 추상이 아니라 생활입니다.
칼을 들고 고기를 자르는 손,
조용히 지켜보는 눈빛,
넘어지지 않게 세워 주는 마음.
그러나 더 깊이 남는 건
“가장 높은 곳에 세워”라는 구절입니다.
높은 곳에 세운다는 것은
더 멀리 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일입니다.
떠남을 준비시키는 사랑.
그보다 어려운 사랑이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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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가 단단해질 때까지 / 기다림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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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중심은 여기입니다.
독수리가 아니라,
사람이 기다림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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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시간이 아니라 성품입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내 소유욕을 한 겹 벗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질문이 더욱 조용히 울립니다.
“나는 그를 키운 것일까
아니면
그가 나를 키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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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 앞에서는 누구도 당당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키운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손을 놓는 법을,
떠남을 축복하는 법을,
사랑이 붙잡는 일이 아니라
지켜보는 일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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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은 새의 일이 아닙니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의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조용히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누군가의 날개를 붙잡고 있는가,
아니면
조심스럽게 놓아주고 있는가
비상하는 새처럼. 도약할 준비는 되어 있는가 날개가 단단해질 때까지
힘찬 날갯짓의 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