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전, 장관 박철언 지나온길, 새로운 길)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지나온 길, 새로운 길


靑民 박철언


푸른 직진도 많았지만

험난한 길 가야만 했던, 나라 운명 걸린 길


우회로의 유연함과 편안함보다

신변위험 무릅쓴 채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수십 차례 비밀출장의 길


대북포용정책으로

평화통일의 초석 다지려

북방정책의 기수로 공산권 문 열어

반쪽외교로부터 전방위 세계외교시대 열려고

냉기류 속을 처음 디딘 외로웠던 살얼음 길

.


사명감 책임감을 온몸에 채웠어도

긴박감에 웅크린 숨이 몇 움큼씩

심장 뒤편으로 빠져나와

수십 년 지났건만 잠결에도 놀라 깨곤 하는가

억눌린 숨결 무게 얼마나 무거웠으면


이젠 푸른 맥박이 뛰는 직진

평온한 길만 걸어갔으면

문학의 숲에서

갇혀있던 숨들

푸른 하늘로 풀어 보내고

맘껏 편 詩의 날개로

자유롭게 비상했으면


이 시는 한 개인의 회고가 아니라, 한 시대의 체온을 품은 기록에 가깝다.

‘길’이라는 가장 단순한 은유를 통해 정치와 외교, 책임과 고독, 그리고 인간의 내면까지 겹겹이 포개 놓는다.


첫 행의 “푸른 직진”은 이상과 신념의 방향성을 말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험난한 길”은 현실의 무게를 드러낸다. 이상은 직선이지만, 현실은 늘 굴곡이었다는 고백이다. 여기서 이미 이 시는 영웅담이 아니라 ‘감당의 역사’로 방향을 잡는다.


“바람 앞의 촛불 같은 / 수십 차례 비밀출장의 길”

이 구절은 긴 설명 대신 긴장감을 남긴다. 촛불은 작고 약하지만 꺼지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존재다. 외교 현장의 고독과 위험, 말 한마디의 무게가 촛불의 흔들림 속에 압축돼 있다.


중반부는 시의 핵심이다.

“냉기류 속을 처음 디딘 외로웠던 살얼음 길”


냉전의 공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시대, 누구도 쉽게 나서지 못했던 첫걸음. ‘살얼음’이라는 표현은 정치적 모험의 감각을 생생하게 살려낸다. 잘못 디디면 깨지는 얇은 얼음, 그러나 건너지 않으면 길이 열리지 않는 상황. 북방외교의 상징이 이 한 줄에 응축돼 있다.


이어지는 내면 고백은 더욱 인간적이다.

“긴박감에 웅크린 숨”

“잠결에도 놀라 깨곤 하는가”


역사는 성과로 기록되지만, 개인에게 남는 것은 긴장과 후유증이다. 이 시는 업적보다 ‘숨’을 말한다. 억눌린 숨결, 가슴 뒤편으로 빠져나간 긴장. 책임을 짊어진 사람만이 아는 생리적 기억이 살아 있다.


마지막 연에서 시는 방향을 바꾼다.

국가의 길에서 개인의 길로, 외교의 현장에서 문학의 숲으로 간다.


“문학의 숲에서 / 갇혀있던 숨들 / 푸른 하늘로 풀어 보내고”


이 대목은 단순한 은퇴의 소망이 아니다. 평생 눌러왔던 감정과 사유가 이제야 언어로 숨 쉬기를 바라는, 늦은 자유 선언이다.

특히

“맘껏 편 詩의 날개로”

라는 표현은 상징적이다.

정치가 현실을 움직였다면, 시는 영혼을 움직인다.

행정의 언어가 아닌 시의 언어로 돌아온 한 인간의 귀환이다.


이 작품은 공적 생애의 무게와 사적 내면의 숨결이 나란히 흐르는 드문 시다.

업적을 과시하지 않고, 고단함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걸어온 길의 감각을 담담히 놓아둘 뿐이다.

그래서 이 시는 말한다.

위대한 길은 화려해서가 아니라, 끝까지 걸었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그리고 이제,

그 길 끝에서 한 사람이 조용히 숨을 고른다.

목숨 걸고

유서를 품고 북방외교 (공산권)의 잠결에 놀라 깨곤 하던 그 시절

이제 시의 날개를 펼쳐 자유롭게

비상하며 행복한

시인으로의 삶을

시인과 국민과 함께하는 날개를 크게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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