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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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은 왔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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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民 박철언
동토의 어둠 뚫고
따뜻하게 차오르는 새 기운
으스스하지만 한층 부드러워진
이른 봄의 아침 공기
겨울의 온갖 아픔 이겨내고
소리 없이 싹트는 푸른 움
산책길은 봄기운으로
가벼운 연둣빛 발걸음이지만
마음은 왜 이리 무거울까
어두운 소식들 때문인가
팔순을 넘어서니 발 빨라진 소식들
친구들이 입원했다는 귀천했다는
푸른 숨결 반짝이는 새봄 왔어도
더 깊어지고 커가는 외로움
봄은 새로 왔건만
주변 비워져 가니 옛 봄이 아니구나
그 봄, 어느 노을 속으로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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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어김없이 돌아오지만, 사람의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 시는 계절의 순환과 인생의 비가역성을 조용히 대비시키며 노년의 마음결을 담아낸다.
겉으로는 봄의 기운이 차오르는데, 내면에는 상실의 무게가 더해지는 역설이 시의 정서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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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둣빛 발걸음’과 ‘무거운 마음’의 대비는 풍경과 심리의 간극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자연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인간의 마음은 자꾸 뒤를 돌아본다.
이 어긋남이 곧 노년의 실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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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빨라진 소식들”이라는 표현에는 세월의 속도가 아니라 이별의 빈도가 담겨 있다.
입원과 죽음의 소식이 잦아지는 나이, 삶의 주변이 비어 가는 체험이 절제된 언어로 전해진다.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얼굴이 떠오르는 지점에서 독자 각자의 기억이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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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봄이 아니구나”라는 탄식은 단순한 계절 감상이 아니다.
함께 봄을 맞이하던 존재들의 부재가 계절의 의미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는 고백이다.
봄의 상실이 아니라 관계의 상실이다.
마지막 물음은 체념이 아니라 회상의 방식이다. 사라진 봄은 소멸이 아니라 기억 속으로의 이동이다. 노을이라는 시간의 색채를 빌려, 지나간 날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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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머무는 자리는 쓸쓸함의 끝이 아니다. 상실을 통과한 사람만이 도달하는 사유의 자리다.
비어 있음은 결핍이 아니라 삶의 밀도가 바뀌는 순간이다.
봄은 다시 오고, 시인은 다시 걷는다.
함께할 사람은 줄었어도 걸어갈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 지속의 의지가 시의 가장 단단한 힘이 될 것이다.
이 작품은 노년의 슬픔을 말하면서도 삶의 방향을 잃지 않는다.
계절은 앞으로 흐르고, 시인은 기억을 품은 채 그 길을 따라간다.
시인의 삶과 봄이 성실하게 돌아오듯,
희망의 봄 또한 조용히 되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