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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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을 넘는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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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심언섭
붉은 장미가 담장을 넘는 것은
단순히 영역을 넓히려는 욕심이 아니다.
안마당의 고요에 갇힌 향기가
바깥세상의 소음과 섞이고 싶어 하는
간절한 연주다.
햇살은 건반 위를 달리는 손가락이 되어
꽃잎마다 층층이 화음을 쌓고,
바람은 현을 긋는 활이 되어
넝쿨 끝에 매달린 음표들을 흔든다.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쉼표 하나가 찍히고,
길 가던 이의 발소리가
잦아들 때,
담장 위에는 낮은 저음의 비올라 곡조가 흐른다.
경계를 허무는 일은
늘 이토록 아름다운가.
벽을 타고 흐르는 초록의 선율이
굳게 닫힌 마음의 문턱을 넘을 때,
세상은 비로소 하나의 악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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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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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을 넘는 꽃, 경계를 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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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언섭의 「담을 넘는 소나타」를 읽고 있으면
어느 순간 장미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담장 위로 고개를 내민 장미 한 송이가 보인다.
그러나 몇 줄을 더 읽고 나면
그 장면은 조용히 소리로 바뀐다.
햇살은 건반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되고
바람은 현을 긋는 활이 된다.
꽃잎은 겹겹이 포개진 화음처럼 울리고
넝쿨 끝에 매달린 꽃들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음표들처럼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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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보이는 풍경이 어느새 들리는 음악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장미는 더 이상 단순한 꽃이 아니다.
햇빛과 바람, 향기와 색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작은 실내악이 된다.
특히 “꽃잎마다 층층이 화음을 쌓고”라는 구절은
이 작품의 핵심을 보여 준다.
겹겹이 포개진 꽃잎을 화음으로 읽어 낸 이 감각은
장미가 지닌 풍성한 생명력을
음악적 울림으로 바꾸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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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더욱 섬세해지는 순간은
세 번째 연에서 찾아온다.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쉼표 하나가 찍히고”
이 구절은 아주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다.
사람이 꽃을 바라보는 그 잠깐의 순간,
세상의 분주한 리듬이 잠시 멈춘다.
시인은 그 멈춤을
‘쉼표’라는 음악의 기호로 읽어 낸다.
길을 가던 발걸음이 느려지고
주변의 소리가 잦아들 때
담장 위 장미는 낮은음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여기서 시인이 선택한 악기가
‘비올라’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장미라면 흔히 밝은 바이올린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시인은 더 깊고 낮은 음색을 가진
비올라를 떠올린다.
그 선택 덕분에
이 시의 장미는 화려한 꽃이 아니라
차분하고 성숙한 울림을 지닌 존재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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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에 이르면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또렷해진다.
“경계를 허무는 일은
늘 이토록 아름다운가.”
담장을 넘는 장미는
그저 식물의 생장이 아니다.
그것은 안과 밖을 가르는 벽을 넘는 일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의 담장을 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초록의 넝쿨이 벽을 타고 넘어갈 때
닫혀 있던 마음의 문턱도 함께 열린다.
그 순간
세상은 서로 다른 소리가 뒤엉킨 소음이 아니라
하나의 악보가 된다.
이 시가 오래 남는 이유는
큰 목소리로 감동을 외치지 않기 때문이다.
담장 하나, 장미 한 송이,
햇살과 바람 같은 아주 작은 풍경을 통해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서로에게 닿는지를
조용히 보여 줄 뿐이다.
시에서 담장을 넘는 것은
넝쿨이 아니다.
오래 닫혀 있던 마음이다.
장미는
그저 먼저 담장을 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