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
호르무즈 단상
■
多情 이인애
문명의 이기인가
악기(惡器)인가
드론과 미사일이 불을 뿜고
피로감이 작열하는 호르무즈
우라늄 농축에 제동을 걸어라
노란 눈
파란 눈
검은 눈
눈눈눈
세계의 눈과 귀가 쏠리는 걸프만
시아파 수니파
무슬림 이슬람
힘의 논리에 흔들리는
세상사
트통령님
악의 축 단죄하사
마두로, 하메네이
단방에 훅 가고
초미의 관심사
다음은 누굴까
걱정 반
기대 반
커져가는 후유증
에너지 길목을 틀어 쥔 봉쇄
치솟는 유가
술렁이는 세계경제
산업의 젖줄로
막힌 동맥을 뚫고
오늘도
호르무즈는 달리고 싶다
■
세계의 화약고를 바라보는 시의 눈
■
~이인애 시인 「호르무즈 단상」을 읽다
■
이인애 시인의 「호르무즈 단상」은 오늘의 세계정세를 시의 언어로 끌어온 작품이다. 많은 시들이 자연이나 개인의 감정을 통해 시대를 우회적으로 말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길을 택하지 않는다. 시는 처음부터 국제정치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간다. ‘호르무즈’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세계의 긴장과 불안이 떠오른다. 시인은 바로 그 지점에 시선을 고정한다.
■
시의 첫 질문은 짧지만 묵직하다.
■
“문명의 이기인가
악기인가.”
■
이 두 줄은 현대 문명의 모순을 단숨에 드러낸다. 인간이 발전이라 부르는 기술이 어느 순간 파괴의 도구로 변해 버린 현실을 정면으로 묻는다. 드론과 미사일이 하늘을 가르는 시대에 기술은 더 이상 중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성취이면서 동시에 인류를 위협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 질문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불안을 정확히 겨눈다.
■
호르무즈 해협은 지리적으로 보면 좁은 물길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시 속에서 그곳은 세계의 신경이 모여 있는 공간처럼 등장한다. “드론과 미사일이 불을 뿜고 / 피로감이 작열하는 호르무즈”라는 구절에서는 사막의 열기와 전쟁의 긴장, 그리고 국제사회가 오랫동안 쌓아 온 피로가 동시에 느껴진다. 작은 해협 하나가 세계 경제와 정치의 흐름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이 이 공간을 더욱 상징적으로 만든다.
■
이 시에서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다음 구절이다.
노란 눈
파란 눈
검은 눈
눈눈눈
■
이 반복은 세계의 시선을 한순간에 모아낸다. 서로 다른 인종과 국가, 수많은 언론과 정치의 시선이 한 지점에 집중되는 순간이 떠오른다. 뉴스 화면과 국제 방송, 위성 영상들이 한 곳을 향해 모여드는 장면을 이 짧은 리듬이 생생하게 보여 준다.
■
이어지는 “시아파 수니파 / 무슬림 이슬람”이라는 구절은 중동의 오래된 갈등을 압축한다. 시인은 긴 설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몇 개의 이름만 놓아두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이름들 사이에는 수백 년의 역사와 권력의 긴장이 숨어 있다. 종교의 이름이 정치의 언어로 불리는 순간 세계의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
이 시의 또 다른 특징은 현실의 언어가 그대로 시 속으로 들어온다는 점이다. “트통령님”이나 “단방에 훅 가고” 같은 표현은 거리의 말에 가깝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시는 살아 있는 시대의 목소리를 얻는다. 뉴스와 인터넷, 사람들의 일상 대화가 시의 리듬 속으로 스며들며 지금이라는 시간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
후반부에 이르면 시의 시선은 다시 세계 전체로 넓어진다.
“에너지 길목을 틀어 쥔 봉쇄
치솟는 유가
술렁이는 세계경제.”
■
이 대목에서 호르무즈는 현대 산업문명의 동맥처럼 보인다. 석유가 지나가는 이 해협은 세계 경제의 혈관과도 같은 곳이다. “산업의 젖줄로 / 막힌 동맥을 뚫고”라는 표현은 특히 강렬하다. 한 지역의 긴장이 전 세계의 경제와 일상에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생명의 은유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
시의 마지막은 조용하지만 의미심장하다.
“오늘도
호르무즈는
달리고 싶다.”
■
해협은 달릴 수 없다. 그러나 시인은 그 물길을 살아 있는 존재처럼 말한다.
봉쇄와 긴장 속에서도 바다는 다시 흐르고 싶어 한다. 배가 지나가고 길이 열리고 세계가 다시 숨 쉬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마지막 문장에 담겨 있다.
■
한국과 세계사의 흐름에 관심을 두어 온 시인의 시선은, 최근 이란을 둘러싼 긴장 속에서 다시 한번 호르무즈 해협으로 향한다. 이인애 시인의 「호르무즈 단상」은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그 공간을 바라보며, 오늘의 국제정치와 문명의 모순을 시의 언어로 기록한 작품이다.
■
작은 해협 하나가 세계 경제와 전쟁의 긴장을 동시에 끌어안고 있는 이 시대에, 시인은 그 현장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인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문명의 기술이 인간을 위한 도구인지 아니면 인간을 위협하는 악기가 되는지를 다시 묻는다.
「호르무즈 단상」은 단순한 단상이 아니라, 오늘의 세계를 기록한 하나의 시대적 질문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