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전, 장관 시인 박철언 ~그대는 어디에 》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그대는 어디에


靑民 박철언


금 밖으로 홀연히 벗어난 그대

휴대폰에서 인기척 삭제되어

아무리 불러도 구멍 난 대답은

뉘엿뉘엿 석양으로 넘어갔나


체온 한 올도 남기지 않고

거품처럼 사라져 가는 그대


그대 빠져나간 빈자리마다

눈물 삼킨 바람만 가득하구나


아스라이 깊은 밤의 동공 속

투영된 그대 눈동자 찾아봐도

어느 시간에서도 열리지 않아


그리움의 무게를 어찌할 수 없어

나보다 더 깊어진 그대의 무게 버려야 하나


먼 낮달처럼 희미하게 웃기만 할 뿐

그 무엇도 커지지 않는 그대 때문에

나의 하루는 진종일 어둠뿐이구나


그대 또 다른 내가 되어

내 호흡 내 심장으로

함께 숨 쉬고 있었던 건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대



박철언 시인의 「그대는 어디에」는 상실 이후의 정서를 단순한 이별의 감상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부재가 한 사람의 하루 전체를 어떻게 점령하는가를 조용하고도 깊게 보여주는 서정시다. 이 시의 힘은 격렬한 절규에 있지 않다. 오히려 말이 꺾인 자리, 대답이 지워진 자리, 체온이 사라진 자리에 오래 머무는 시선에서 나온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읽을수록 ‘떠나간 사람’을 말하는 시이면서 동시에 ‘떠나간 뒤에도 끝내 떠나보내지 못하는 마음’을 말하는 시로 읽힌다.


첫 연은 매우 인상적이다.

“휴대폰에서 인기척 삭제되어”라는 구절은 현대적이면서도 낯설지 않다. 예전의 이별 시가 편지, 골목, 발자국, 바람을 통해 부재를 드러냈다면, 이 시는 휴대폰이라는 오늘의 일상 사물을 통해 관계의 소멸을 감각화한다. 단순히 연락이 끊겼다는 진술이 아니라, ‘인기척 삭제’라는 표현을 통해 존재의 흔적 자체가 디지털 공간에서 지워진 상태를 보여준다. 이것은 요즘의 상실이 얼마나 비가시적이고도 냉정한가를 압축한다. 그러나 박철언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삭제된 기척은 곧 “구멍 난 대답”이 되고, 다시 “석양”으로 넘어간다. 이 흐름은 대답 없음이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하루의 빛이 저무는 방식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매우 서정적이다. 응답의 부재가 곧 하루의 몰락으로 옮아가는 것이다.


둘째 연과 셋째 연에서는 부재가 물리적 감각으로 번져 나온다.

“체온 한 올도 남기지 않고 / 거품처럼 사라져 가는 그대”라는 구절에는 사랑의 끝이 얼마나 허망한가 가 담겨 있다. 특히 ‘체온 한 올’이라는 표현은 섬세하다. 대개 체온은 온기, 손길, 사람 냄새와 함께 기억되는데, 시인은 그것을 ‘한 올’이라고 세분하여 말함으로써 남아 있는 마지막 미세한 잔여조차 사라졌음을 강조한다. 이어 “그대 빠져나간 빈자리마다 / 눈물 삼킨 바람만 가득하구나”에서는 빈자리가 단지 공간이 아니라 감정의 와류가 되는 순간이 포착된다. 바람은 원래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눈물을 삼킨’ 존재가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이 슬픔을 머금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매우 시적이다.


이 시의 중반부는 밤과 시선의 이미지가 주도한다.

“아스라이 깊은 밤의 동공 속 / 투영된 그대 눈동자 찾아봐도 / 어느 시간에서도 열리지 않아”라는 대목은 특히 아름답고도 쓸쓸하다. 동공과 눈동자가 서로를 비추는 이미지 속에서, 사랑은 기억과 환영의 차원으로 옮겨간다. 그러나 그 환영은 결코 문처럼 열리지 않는다. 여기서 ‘열리지 않아’는 단순한 단념이 아니라, 도달 불가능한 시간의 벽을 뜻한다. 다시 말해 그리움은 계속 반사되지만 결코 현존으로 복귀하지 못한다. 이 대목에서 시는 그리움을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제시한다. 보고 싶으나 볼 수 없고, 닿고 싶으나 닿을 수 없는 구조. 바로 그 막힘이 이 작품의 슬픔을 두텁게 만든다.


후반부의 “그리움의 무게를 어찌할 수 없어 / 나보다 더 깊어진 그대의 무게 버려야 하나”는 이 시의 핵심 진술이라 할 만하다. 사랑하는 사람은 떠났는데, 이상하게도 남은 쪽의 내면에서는 그 사람이 점점 더 무거워진다. 실제로는 부재하는 존재가 기억 속에서는 더 큰 질량을 갖게 되는 것, 바로 그것이 상실의 역설이다. 박철언은 이 역설을 과장 없이 담백한 말로 붙들어낸다. “버려야 하나”라고 스스로에게 묻지만, 독자는 이미 안다. 이 질문은 버리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끝내 버릴 수 없음을 확인하는 질문이라는 것을. 이 망설임이야말로 시의 진정성이다.


마지막 연은 이 시를 단순한 이별 시에서 존재론적 서정으로 끌어올린다.

“그대 또 다른 내가 되어 / 내 호흡 내 심장으로 / 함께 숨 쉬고 있었던 건가”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사랑을 타자가 아니라 내 안으로 들어온 존재로 바라본다. 사랑한 사람은 내 바깥의 사람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내 호흡과 심장의 일부가 되었던 존재였다는 자각이다. 그래서 이 시의 마지막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대”는 단순한 집착의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내 존재의 일부가 되어버린 타자를 향한 고백이다. 타인을 잊는다는 것은 결국 내 일부를 도려내는 일과 같다는 사실을, 이 시는 조용히 말해준다.



전체적으로 「그대는 어디에」는 현대적 소재와 고전적 서정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휴대폰이라는 오늘의 사물에서 출발하지만, 끝내 도달하는 곳은 체온, 바람, 밤, 눈동자, 심장 같은 오래된 서정의 원형들이다. 그래서 이 시는 낯설지 않으면서도 진부하지 않다. 언어는 어렵지 않은데 정서는 얕지 않다. 특히 이 작품의 미덕은 감정을 함부로 부풀리지 않는 데 있다. 울부짖지 않기에 오히려 더 아프고, 붙잡아 흔들지 않기에 오히려 더 오래 남는다.


박철언 시인의 이 시는 사랑이 끝난 자리에 남는 것이 공허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때로 더 짙어진 기억이고, 더 무거워진 부재이며, 끝내 자기 존재의 일부로 굳어버린 타인의 흔적이다. 그런 점에서 「그대는 어디에」는 누군가를 잃은 뒤의 슬픔을 노래한 시이면서, 동시에 사랑이 인간 내부를 어떻게 바꾸어놓는지 증언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조용하지만 깊고, 슬프지만 품위가 있다.

이 시의 여운은 바로 그 품위에서 오래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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