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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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의 끝에서 영성으로~이어령 선생을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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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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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래도록 ‘아는 것’을 삶의 진보라 여겨왔다. 더 많이 이해하고, 더 정확히 설명하며, 더 분명한 언어로 세계를 붙잡으려 했다. 지식은 언제나 앞서 나갔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가며 스스로를 성장이라 불렀다.
그러나 어느 순간,
설명이 닿지 않는 자리가 나타난다.
아무리 말해도 부족하고,
아무리 이해해도 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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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은 그 지점에서 멈추어 서신 분이다. 지성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끝까지 밀어붙이셨다. 그리고 그 끝에서, 지식으로는 더 이상 건널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셨다. 그때 비로소 다른 길이 열렸다. 그것이 영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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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은 나누고 구분한다. 이름을 붙이고 질서를 세운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이해는 세계를 일정한 틀 안에 가두기도 한다. 모든 것이 설명되는 순간, 세계는 더 이상 신비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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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은 그 틀을 한 번 더 넘어선다.
설명하지 않는 자리,
말을 멈추는 자리로 우리를 데려가신다.
그곳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존재’를 만난다.
나뭇잎 하나를 바라보는 일도 그렇다. 그것을 분류하고 해석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것과 거리를 둔다. 그러나 아무 말 없이 바라볼 때, 그 잎은 비로소 하나의 세계로 다가온다. 이해가 아니라, 마주함이다
영성은 그래서 더하는 길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씩 내려놓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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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아 올린 생각을 덜어내고,
붙잡고 있던 확신을 놓을 때
비워진 자리에서
비로소 다른 빛이 스며든다.
이어령 선생의 사유는 그 빛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앞에 서는 태도를 말해 주신다. 겸허하게, 조용히, 그리고 끝내 침묵으로.
지성은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러나 그다음은
설명으로 건널 수 없는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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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더 알려하지 말고
더 밝히려 하지 말고
조금은 덜 말하고
덜 쥐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어야 한다.
영성은 그때 비로소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와 있던 것을
뒤늦게 깨닫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