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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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꽃 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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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명선 시
어디로 가나
어디로 갈까나
유혹하는 저 꽃들의
애원 어찌하고
멈춰 선 발길
더는 갈 수가 없으니
온 산하가 붉게만 타다가
그대 그리움도 태우고
나마저 태우면
어찌하나요
어찌 갈까나
눈에 밟혀서 어찌 갈까나
한사코 붙잡는 저 철쭉꽃
애간장 녹이는
연정을
발자국마다
다홍빛으로 타는 그리움
바람마저 가지 말라고 하고
서산의 해는 숨넘어갈
듯한데
몰라라 차라리 내가
철쭉이 되어 천년만년
그대를 기다리는 화신이나
되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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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2,
붉게 타는 존재, 머무름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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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사랑을 말하지만, 그 본질은 사랑의 움직임이 아니라 머무름의 상태에 있다.
화자는 처음부터 길 위에 서 있으나, 그 길은 더 이상 나아가기 위한 길이 아니다.
“어디로 가나 / 어디로 갈까나”라는 반복은 방향의 상실이 아니라, 이미 움직일 수 없는 존재의 상태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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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철쭉은 단순한 꽃이 아니다.
“유혹하는 애원”이라는 모순된 언어 속에서, 꽃은 인간보다 더 강한 힘으로 등장한다.
떠나야 할 이유보다 머물게 하는 힘이 더 깊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이 시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사유와 맞닿는다.
존재란 어디로 가는가 보다, 어디에 머무르는가의 문제라는 통찰이 이 시 속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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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연에서 붉음은 감정을 넘어 존재의 상태로 확장된다.
“온 산하가 붉게만 타다가”라는 구절에서 그리움은 개인의 감정을 넘어 세계 전체로 번진다.
사랑은 따뜻함이 아니라 소각되는 감정, 타오르며 사라질 것 같은 긴장으로 변한다.
이 불의 이미지는 파블로 네루다의 사랑 시를 떠올리게 하지만, 방향은 다르다.
네루다가 불 속에서 확장을 말한다면, 이 시는 불 앞에서 멈춰 선다.
타오름이 아니라 타버리기 직전의 망설임이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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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연에서 화자는 더 이상 주체가 아니다.
“눈에 밟혀서 / 어찌 갈까나”라는 반복은 선택이 아니라 붙잡힘의 상태를 보여준다.
사랑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붙잡혀 있는 상태라는 고백이다.
이 감각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학과 닿는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견디는 것이라는 그의 사유가 이 장면에서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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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연에서는 시간마저 흔들린다.
“서산의 해는 / 숨넘어갈 듯한데”라는 표현은 하루의 끝이 아니라 감정의 극한이다.
바람조차 붙잡는 장면에서, 세계는 흐르지 않고 정지한다.
이 정지는 죽음이 아니라, 순간을 영원으로 붙들려는 몸부림이다.
이는 마쓰오 바쇼가 보여준 정지의 미학과 닿아 있지만,
이 시는 자연의 고요가 아니라 감정의 격렬함 속에서 정지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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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은 변신이다.
“차라리 내가 / 철쭉이 되어”라는 선언은 사랑이 감정을 넘어 존재의 형식을 바꾸는 단계로 나아간다.
이 장면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가 운명 속에서 변신했다면, 이 시의 화자는 스스로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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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시는 사랑의 시가 아니다.
이 시는 떠나지 못하는 존재의 시,
머무름이 곧 존재가 되는 순간을 그린 시다.
특히 “발자국마다 / 다홍빛으로 / 타는 그리움”은 핵심이다.
발자국은 이동의 흔적이지만, 여기서는 떠남이 아니라 남겨짐의 흔적이다.
걸어가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존재, 그 역설이 붉게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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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시에서 사랑은 이동이 아니라 정지이며,
정지는 가장 깊은 존재의 형식이 된다.
마지막의 질문은 이미 결심이다.
인간으로 흔들리기보다, 꽃이 되어 타오르겠다는 선택이다
그 붉음 속에서
사랑은 비로소 시간보다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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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위한 사유의 확장
이 시는 다음의 사유들과 함께 읽을 때 더욱 깊어진다.
마르틴 하이데거
~ 존재는 어디로 가는가가 아니라, 어디에 머무르는가의 문제
파블로 네루다
~ 사랑을 불의 이미지로 확장한 시적 세계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사랑을 견디는 존재의 방식으로서의 시
마쓰오 바쇼
~ 순간을 붙들어 영원으로 만드는 정지의 미학
오비디우스
~존재의 형식이 변하는 사랑의 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