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정연수~그리운 사람아》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정연수 시인의 ^둠벙^


그리운 사람아


살구꽃

만발할 때

입맞춤하던 사람아


꽃바람

타고 먼 길 떠난

사랑했던 님이여


살구는

탐스럽게 익었는데

그 사람 여기 없고

가지마다 그리움이 주렁주렁


보고 싶어

꿈속을 헤매어도

그 얼굴 보이지 않는다


소리쳐

불러봐도

대답 없는 사람아


길 잃은 이 사랑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이 시는 한 번 떠난 사랑이 어떻게 시간 속에서 ‘풍경’으로 남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격정도, 과장도 없다. 대신 계절과 사물에 마음을 걸어 두고, 그 자리에 서서 오래 바라보는 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살구꽃과 살구다. 꽃과 열매는 시간의 양쪽 끝이다. 꽃은 약속이고, 열매는 결과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 둘이 이어지지 않는다. 꽃 아래서 나누었던 입맞춤은 있었지만, 열매가 익는 계절에는 그 사람이 없다. 이 어긋남이 시 전체를 끌고 간다. 사랑은 있었으나, 함께 맞이하는 결실은 없었다는 사실. 그것이 이 시의 중심이다.


“가지마다 그리움이 주렁주렁”이라는 구절은 특히 좋다. 보통 열매가 달려야 할 자리에 감정이 매달려 있다. 자연의 질서가 인간의 감정으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이때 그리움은 추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손에 잡힐 듯 무겁게 달린 어떤 것으로 변한다. 그래서 이 시의 슬픔은 가볍지 않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슬픔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시는 점점 더 단순해진다.

“보고 싶어 / 꿈속을 헤매어도”

“소리쳐 / 불러봐도”


이 반복되는 시도들은 모두 실패로 끝난다.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닿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재’ 자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부르지만 닿지 않는 구조다. 이 구조가 사랑을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마지막 질문에

“길 잃은 이 사랑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이 문장은 단순한 탄식이 아니다. 사랑이 끝났다는 말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고백이다. 상대는 사라졌지만 사랑은 남아 있다. 그래서 갈 곳을 묻는다. 이 질문에는 체념보다도 방향을 잃은 지속성이 담겨 있다. 그것이 더 아프다.

이 시는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정확하다.

사랑이 떠난 뒤 남는 것은 거창한 상처가 아니라,

익어가는 계절과 비어 있는 자리라는 사실을

조용히, 그러나 오래 남게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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