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김석인 시인 ~한식 조상을 부르는 아침》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寒食 — 조상을 부르는 아침


— 夕江 김석인


불을 끈 아침

연기마저 길을 잃고

하늘 끝에 걸려 있다


찬밥 한 그릇

그 앞에 앉아 부르던 이름들

오늘은 더 낮아져

입술 끝에서 무너진다


다정히 불러 보아도

대답 없는 산자락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아

가슴만 먼저 젖는다


살아 있을 적에는

미처 건네지 못한 말들이

이제야 밥알처럼 굳어

목에 걸린다


한 줌 흙 위에

늦게 놓인 정성은

너무 늦은 손길처럼

차갑게 식어 간다


불을 피우지 못하는 날

우리는 끝내 깨닫는다


그리움이란

살아 있는 자의 몫으로 남아

끝내 다 전하지 못할

이름이라는 것을



김석인 선생님의 이 시는 ‘寒食’이라는 절기를 단순한 풍속으로 다루지 않는다. 불을 끄는 관습을, 오히려 말할 수 없게 되는 시간으로 끌어당긴다. 그래서 이 시의 중심에는 ‘불’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것’이 놓인다.


첫 연의 “불을 끈 아침”은 단순한 금화(禁火)의 상태가 아니다. 연기마저 길을 잃었다는 표현에서, 이미 이 세계는 방향을 상실한 공간이 된다. 연기는 본래 위로 올라가야 하지만, 여기서는 ‘하늘 끝에 걸려’ 멈춘다. 이 정지는 곧 시간의 정지이며, 기억의 유예다.


둘째 연에서 ‘찬밥 한 그릇’은 제사의 형식이 아니라, 말의 부재를 담는 그릇으로 변한다. 이름을 부르는 행위가 “입술 끝에서 무너진다”는 구절은 매우 중요하다. 이름은 불러야 완성되는 것인데, 여기서는 발화 직전에 붕괴된다. 이때 이름은 더 이상 호명이 아니라, 닿지 못한 감정의 잔해가 된다.


셋째 연의 산자락은 침묵의 주체로 등장한다. 자연은 응답하지 않는다.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한 고요가 아니라 ‘되돌려 줄 세계 자체의 부재’를 뜻한다. 그래서 울음은 밖으로 퍼지지 않고, “가슴만 먼저 젖는다.” 이 내면으로의 수렴은 이 시 전체의 정서를 규정한다.


넷째 연은 이 작품의 정서적 핵심이다.

“밥알처럼 굳어 목에 걸린다”는 표현은 놀라울 만큼 구체적이다. 말하지 못한 말이 추상적 감정이 아니라, 실제 삼키지 못하는 물질로 변한다. 밥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생을 막는 것이 된다. 살아 있을 때 건네지 못한 말은, 죽음 이후에야 가장 무겁게 실체를 갖는다.


다섯째 연에서 ‘늦게 놓인 정성’은 제의의 윤리적 한계를 드러낸다. 정성은 있지만, 그것이 ‘늦었다’는 자각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이 시는 효나 제사의 미덕을 찬양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그것이 시간을 되돌리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차갑게 받아들인다.


마지막 연에서 시는 조용히 결론에 이른다.

그리움은 죽은 자의 것이 아니라, 철저히 살아 있는 자의 몫이다.

이 말은 동시에 위로이면서도 형벌이다.

“끝내 다 전하지 못할 이름”이라는 종결은, 이름을 부르는 행위 자체를 근본적으로 흔든다. 이름은 기억을 이어주는 끈이지만, 동시에 영원히 닿지 못하는 거리의 증거이기도 하다.


이 시의 미덕은 과장하지 않는 데 있다. 울음을 크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더 깊은 곳에서 울리게 만든다. 절제된 언어와 구체적인 사물, 찬밥, 밥알, 한 줌 흙이 결합되면서, 감정은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결국 이 작품은 ‘부르지 못한 이름들’에 관한 시다. 그리고 예컨대 그 이름들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입술 끝에서 불려지며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 조상을 부르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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