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이인애 시인 ~카바티나를 들으며》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카바티나를 들으며

— 이인애


초저녁에 창문을 열어 둔 건

자유로운 일탈(逸脫)을

동경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기타 한 줄이

내 이름을 부르듯 연주한다


카바티나—


그 선율 앞에서

하루가 멈칫하며

마음속 깊이 흔들렸다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그저 미묘한 떨림이

가슴을 후벼 파듯 스치고


비로소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힘겹게 버티고 있었는지를


순간을 기도하듯

그러나 조용히

변신을 꿈꾸고 있었다


곡이 뒷소절에 접어들수록 나는

포수에 쫓겨 동동거리던 사슴에서

그저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검푸른 하늘을 훨훨 날고 있다


오늘 밤 곡조는 도돌이표를 달고

나의 기도는 길어진다



이 시는 Cavatina의 음색처럼, 말보다 먼저 마음의 결을 흔든다. 이인애의 시선은 외부의 풍경이 아니라, 아주 미세한 내면의 떨림을 끝까지 따라간다.


시의 시작은 ‘창문’이다.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닫혀 있던 자신을 조금 풀어놓는 행위다. “동경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라는 유보된 문장은, 확신보다 더 깊은 진실을 드러낸다. 이 시는 단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탐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기타 한 줄이 / 내 이름을 부르듯”이라는 대목에서 음악은 대상이 아니라 관계가 된다. 듣는 행위는 곧 불려지는 경험으로 바뀌고, 시인은 음악 속으로 들어간다. 이 순간부터 시는 감상이 아니라 ‘응답’이 된다.


중반부의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는 감정의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감정이 너무 정확해서 어디로도 흐르지 못하는 상태다. 이인애 시인의 언어는 이 미세한 상태를 억지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후벼 파듯 스친다”는 촉각적 이미지로, 독자의 몸에 직접 닿게 한다.


사슴에서 나비로의 전환은 이 시의 정점이다. 쫓기던 존재에서 날아오르는 존재로의 변화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존재 방식 자체의 이동이다. 특히 ‘검푸른 하늘’이라는 색채는 밤의 깊이와 자유를 동시에 품으며, 카바티나의 저음과 닮아 있다.


마지막의 “도돌이표”는 반복이 아니라 심화다. 같은 선율이 돌아오지만, 그 선율을 듣는 나는 이미 달라져 있다. 그래서 기도는 끝나지 않고, 음악과 함께 오히려 더 길어진다.


이인애 시인의 이 시는 조용하다. 그러나 그 조용함 속에서, 오래 버텨온 시간들이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그 이름은, 끝내 가볍게 날아오른다. 시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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