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알송알 Sep 09. 2023

함께여서 다행이다

루리 작가의 <긴긴밤>을 읽었습니다.

표지그림을 완전하게 보고 싶을때가 있다. 그때 표지의 도서관  바코드가 원망스럽다.




코뿔소 노든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코끼리 고아원에서 야생의 자연으로, 야생에서 동물원으로 , 동물원을 떠나 어린 펭귄을 바다로 데려주기 위한 길 위에서 위험에 부딪치고 고난을 겪는다.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까움은 있었지만 노든의 삶이 불행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노든의 곁에는 항상 누군가 있었다.


코끼리 고아원에는 코끼리처럼 코가 길지 않아도 별 문제없다며 노든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코끼리들이 있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눈이 보이는 코끼리와 살을 맞대고 걸으면 되고 다리가 불편하면 다리가 튼튼한 코끼리에게 기대서 걸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코끼리들이다. 그들은 멋진 코뿔소가 되기 위해 고아원을 떠나 바깥세상으로 향하는 노든을 격려하고 응원한다.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그래’


바깥세상에는 자연에서 살아가는 것이 서툰 노든을 엉뚱하지만 특별하다고 불러주는 아내와 딸이 있었다. 아내와 딸을 잃고 노든은 동물원으로 잡혀간다. 노든의 밤은 악몽을 꿀까 무서워서 잠들지 못하는 긴긴밤이 되었다.


동물원에서 태어나고 자란 코뿔소 앙가부는 노든에게 ‘기분 좋은 이야기를 하다 잠들면 악몽을 꾸지 않고 잠들 수 있다’고 알려주고 밤마다 노든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노든이 안정을 되찾을 무렵 앙가부는 코뿔소의 뿔을 훔치는 사람들에 의해 죽는다. 다시 긴긴밤이다. 전쟁으로 동물원은 불타고 노든은 펭귄 치쿠와 길을 나선다.


펭귄 치쿠는 친구 윔보와 함께 버려진 알을 품었다. 윔보는 자신을 희생해서 알을 지키고 치쿠는 알을 양동이에 담아 노든과 함께 동물원에서 빠져나온다. 노든에게 치쿠는 악몽을 꾸지 않게 해주는 최고의 길동무였다. 치쿠는 끝까지 알을 품다 죽는다.


치쿠의 죽음 이후 알에서 깨어난 아기 펭귄은 노든에게 내일을 살게 하는 힘이다. 아기 펭귄을 바다로 데려다 주기 위해 힘을 낸다. 아파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노든은 다시 인간에게 잡히고 아기 펭귄을 떠나보낸다. ‘이미 훌륭한 코뿔소이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다’는 말로 격려한다. 아기 펭귄은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세상의 전부였던 노든을 두고 바다를 향해 홀로 떠난다. 노든이 코뿔소가 되기 위해 코끼리 고아원을 나온 것처럼 말이다.  아기 펭귄도 노든처럼 수많은 긴긴밤을 마주 하겠지만 악몽을 꾸는 긴긴밤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와 온기를 나누는 기분 좋게 잠드는 밤이 되리라.


나는 누구인가.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혼자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든에게 코끼리들, 가족, 앙가부, 치쿠, 아기펭귄이 있어 다행이다. 함께여서 좋았다.


덧붙임)

글도 좋고 그림은 더 좋다. 그림책으로 엮어도 좋겠다 싶을 만큼 그림의 울림이 있다. 루리 작가님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렸다.

21회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대상 작품이다. 이렇게 좋은 작품을 어린이들만 읽으면 어른들에게 손해다. 어른들에게 강력추천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