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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Sep 26. 2023

농부는 아니지만 농사가 걱정이다

가을비가 자주 많이 온다


비오는 날 창 밖 풍경은 아름다운데 농사가 걱정이다

또 비 온다.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여름 끝자락이자 가을 초입인 요즘, 벼를 비롯한 온갖 농작물이 잘 익으려면 햇빛의 뜨거운 기운을 받아야 한다. 어찌 된 셈인지 하루가 멀다고 비가 내린다. 일기장에 적어 놓은 날씨를 보니 9월 중순 들어서는 얼추 일주일에 5일 정도는 비가 내렸다. 한 두 시간 부슬부슬 내린 날도 있었지만 대개는 오늘처럼 하루 종일 내렸다. 걱정이다. 이렇게 비가 자주 오면 곡식들이 여물기도 전에 땅으로 떨어지고 썩어버리면 어떡하나 싶다.


고등학생 때까지 눈을 좋아했다. 내 고향 대구는 눈구경이 어렵다. 눈만 오면 좋아서 강아지처럼 팔짝거리며 뛰어다녔다. 생각만으로도 진절머리 나는 등하굣길의 만원 버스를 더 이상 타지 않아도 되는 대학생이 되고는 눈보다 비가 더 좋았다. 촉촉한 공기와 착 가라앉은 색감이 어우러진 풍경이 그냥 좋았다. 우산 위로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도 좋지만 비를 맞는 것도 재미있었다. 거기에 따뜻한 한 모금의 커피가 더해지만 더할 나위 없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비가 조금 싫어졌다. 빨래 걱정이 컸다.  빨래건조기가 있는 요즘은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이다. 놀이터에 놀러 가지 못하는 아이들과 하루종일 집안에서 보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집안에서 노는 것에 지치면 가끔 아이들과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지들이 물 만난 물고기인 줄 알았다. 이 웅덩이에서 첨벙 저 웅덩이에서 첨벙거리며 놀다 보면 옷도 신발도 흠뻑 젖고 흙투성이가 되었다. 또 빨래 걱정이다. 비가 오면 한숨부터 나오는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이 크고 새 집으로 이사 오고 난 후 다시 비가 좋아졌다. 이제는 비를 맞으며 거리를 쏘다니지 않는다. 산성비도 걱정이지만 이 나이 되니 비를 많이 맞았다 싶으면 감기 걸리기 십상이다. 그냥 바라보는 비가 좋다. 우리 집은 창이 넓다. 창 넓은 찻집만큼 넓다. 남편의 작업실이자 손님맞이 거실로 쓰고 있는 공간의 창밖 풍경이 아름답다. 비 오는 날 탁자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 딱이다. 이런 게 힐링 아니겠나. 지난 5월 친구들이 1박 2일로 놀러 온 적 있다. 이틀 동안 폭우가 쏟아져서 꼼짝도 못 하고 작업실 탁자에 앉아 비 구경하며 먹으며 얘기하며 놀았다. 20시간 정도 수다만 떨다가 돌아갔지만 친구들이 그랬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재미있는 여행이었다고.


아, 그런데 비가 와도 너무 자주 많이 온다. 지난여름 MSN(Micro Soft Network)이 7월과 8월 서울에 2~3일만 빼고 한 달 내내 비가 내린다는 비공식 예보를 내렸다. 기상청에서는 과학적으로 가장 정량적인 연구할 수 있는 최대기간이 열흘이라면서 가능성이 희박한 예보라는 자료를 내었다. 실제로 7월에 비가 내린 날은 20일 남짓이라고 하니 MSN의 예측은 적중률이 크게 높지 않았지만 체감은 한 달 내내 비가 온 것 같다. 비 피해가 커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여름 내내 비가 온 것 같은데 9월도 마찬가지다.


옆집 감나무의 감이 비가 한 번 올 때마다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우리 집 감이 아닌데도 아깝고 안타깝다.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벼가 잘 여물어야 하는데 비를 이렇게 많이 맞아도 될까.  배추, 무, 사과, 들깨, 참깨, 밤, 고추가 걱정이다. 매일매일 작물들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아서 그런가 내 농사도 아닌데도 그렇다. 집 안에 앉아 있어도 논과 밭에서 크고 있는 작물들이 보이니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내가 농부는 아니지만 농사가 걱정되는 하루하루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걱정이다. 농사가 잘 되지 않으면 비싸서 못 먹고 없어서 못 먹는다. 비야, 이제 그만.


#202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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