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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Nov 08. 2023

공짜는 없다

눈호강하고 낙엽을 쓸다


우리 집 마당에는 나무가 없다. 화분 몇 개, 잔디밭과 자그마한 꽃밭과 텃밭과 시멘트 바닥이 전부다. 지난봄에 사과나무와 블루베리 나무를 심었지만 아직은 땅에 꽂힌 지팡이 수준이라 나무라 부르기는 민망하다. 그럼에도 가을 풍경을 맘껏 즐기고 있다. 마당에서 보이는 앞산의 단풍, 옆집 감나무의 주황빛, 뒷집의 대나무가 차르륵차르륵거리는 소리에 눈호강과 귀호강을 맘껏 하고 있다. 오~ 아름다워라.


아침에 가끔 마당을 한 바퀴 돈다.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매일매일 살펴보아야 한다는데 이태껏 습관이 되지 않았다. 오늘 아침 뒷마당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우리 집은 나무도 없는데 말이다. 온 동네 나뭇잎들이 다 모여드는 것 같다. 그래도 운치 있어 좋았다. 낙엽 밟는 재미가 쏠쏠하니 그냥 두어도 상관없으리라. 가끔 밟아야지했다. 낙엽을 밟을 때마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는 내가 과자 먹을 때 나는 소리 같아 또 반갑고 그렇다.


분위기 내며 낙엽을 좀 밟아 볼까 싶었는데 이런 젠장, 운치와 낭만은 개뿔이다. 낙엽들이 주로 모여 있는 데가 배수로와 배수구이다. 며칠 전 가을비가 내렸고 낙엽이 배수구를 막고 있어 빗물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않아 물에 잠긴 도로 모습을 뉴스에서 본 것이 떠올랐다. 낙엽을 제때 치우지 않으면 큰일 나겠구나 싶었다. 지난여름에 물받이통의 분수쑈도 공포스러웠다. 어쩔 도리가 없다. 낙엽을 쓸었다. 보는 것보다 낙엽이 훨씬 많았다. 심지어 빗물에 젖어 딱 달라붙어 마당에서 떨어지기를 거부하는 낙엽도 많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다. 남의 것으로 눈호강과 귀호강을 실컷 한 대가로 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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