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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Jun 16. 2024

브뤼헐 그림을 보고 또 보고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을 나는 잘 모른다. 피카소, 고갱, 고흐, 마티스. 세잔, 호크니도 아니고 브뤼헐이라고? 이름을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무슨 작품이 있더라? 잘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내가 브뤼헐과 그의 그림을 계속 만나고 있다. 우연히 말이다.


“한 편의 그림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가 담길 수 있구나! 대단하다.”

처음은 OTT 플랫폼 웨이브에서 방영한 예능 프로그램 <사상검증구역:더 커뮤니티> 그의 그림을 보았다.  <사상검증구역 : 더 커뮤니티>은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등 다양한 영역에서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참가자들이 그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들은 함께 먹고 자고 토론하고 합의하고 규칙을 정하고 일한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돈이 있어야 먹을거리를 장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일은 제작진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활동을 의미한다. 브뤼헐의 그림 <네덜란드 속담>에 그려진 속담을 맞추는 만큼 상금을 확보하는 활동이 있었다. 한 편의 그림에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참가자들과 함께 속담을 맞추며 브뤼헐을 만났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 무엇이 더 눈부실까?”

두 번 째는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라는 에세이에서 만났다. 작가 패트릭 브링리는 대학 졸업 후 <뉴요커>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의지하던 형의 죽음으로 저자는 삶의 의욕을 잃는다.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미술관 경비원 일을 시작한다. 자신이 아는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며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저자가 미술관에서 본 수많은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브뤼헐의 <곡물 수확>도 그중 하나이다. <곡물 수확>에서 우리는 추수 중에 쉬고 있는 농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저자는 말기암 환자였던 작가의 형이 어느 날 갑자기 맥너겟이 먹고 싶다고 하자, 밤거리로 뛰어나가 맥너겟을 한 아름 사들고 들어온다.  그는 브뤼헐의 그림을 보며 평생 노동을 하고 궁핍한 삶을 살아가는 소작농들이 잠시지만 즐겁게 휴식을 취하는 모습도, 생사의 갈림길에 선 형이 맥너겟을 먹고 싶어 하는 모습도 모두 우리 삶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을 한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 어느 쪽이 더 눈부시고 놀라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또 브뤼헐 그림이라고? 어디 있는데? “

 또 만났다. 이번에는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는 소설이다.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다. 부커상 후보 중에서 가장 짧은 소설이었다나. 100쪽 남짓으로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지만 여운은 길다. 여백을 읽어내고 행간을 이해하려고 애쓰다 보면 생각이 많아지는 작품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 처음에는 브뤼헐의 그림이 있는 줄 몰랐다. 독서 모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표지 그림이 브뤼헐의 <눈 속의 사냥꾼>이라는 것을 알았다. 도서관의 책은 대개 겉표지가 없다. ( 도서관은 분리한 겉표지를 어떻게 정리하는지 뜬금없이 궁금하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책 내용과 딱이구나 싶다. 눈 덮인 마을 위를 날고 있는 그림의 까마귀가 소설 속의 나쁜 소식을 전해 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읽고 보고 즐긴 작품 속에서 연달아 그의 그림이 나오는지 참 신기하다. 무슨 알고리즘일까? 게다가 3개 작품 모두 참 좋았다. 감동, 메시지, 배움, 반성과 성찰이 있는 작품이다. 연속으로 마음을 울리는 작품을 만나고 매 작품에서 동일한 화가의 그림을 보고 또 보다니, 3번 우연히 만나면 인연이라고 하지 않나? 로맨틱 코미디라면 사랑에 빠질 타이밍이다. 브뤼헐과  그의 작품에 어디 한번 빠져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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