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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Jun 17. 2024

일단 나도 달려 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는다. 난 그의 작품에 마음이 잘 열리지 않는다.  2021년 봄날, 한겨레 신문 인터뷰에서 가수 최백호는 ‘하루키의 소설에는 진정성이 없다. 너무 완벽하게 짜여 있다.’라고 했다. 최백호의 말에 하루키의 팬들은 대노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무릎을 쳤었다. 많은 친구들과 지인들이 하루키를 추앙하고 좋아한다, 하루키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냐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었다. 이제는 이렇게 대답해야지 했었다.


달리기를 못한다. 제대로 달리지 못하니 재미없고, 재미없으니 딱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달리기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헤어졌다. 그 후로 달려 본 기억이 없다. 아이들을 돌보고 놀아 줄 때는 꽤 뛰어다녔다. 하지만 그런 뜀박질을 달렸다고 말하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달리기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지금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있다. 친구가 함께 읽자고 하지 않았으면 절대로 시작하지 않을 제목이다. 달리기와 하루키이니까 말이다. 어머나, 그런데 웬일이니? 책이 재미있다. 하루키가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더워도 추워도 일본에 있으나 미국에 있으나 어쨌거나 매일매일 늘 언제나 달리는 이야기이다. 그는 달리고 또 달리고 달린다. 무더운 여름날, 그가 오리지널 마라톤 코스를 역방향으로 완주하고 나서 성취감은 없고 ‘이제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좋다’라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왠지 눈물이 났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루키가 주구장창 달리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하루키가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와 삶의 철학을 알 수 있었다.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짐작이 되었다. 인상적인 문장이 많았다.


‘계속하는 것-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하루에 1시간을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가령 몇 살이 되어도 살아 있는 한, 나라고 하는 인간에 대해서 새로운 발견은 있는 것이다. 발가벗고 거울 앞에 아무리 오랜 시간 바라보며 서 있는다 해도 인간의 속까지는 비춰주지 않는다.’

‘단점이 압도적으로 많고, 장점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나라는 인간의 불쌍한 대차대조표.’

‘가령 그것이 실제로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러나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굳이 하루키의 말을 듣지 않아도 나도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다. 나도 그럭저럭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 경험으로 깨우쳤다. 비단 글쓰기뿐 아니라 무언가를 하려면 재능이 있어야 하지만 재능보다 더  필요한 것은 집중력과 인내라는 것. 집중해서 인내하며 지속하려면 체력이 기본이다. 하루키는 소설을 착실하게 쓰기 위해서 매일 운동한다. 알고 있지만 행동하지 않는 것이 하루키와 나의 다른 점이리라. 지금이라도 매일매일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필요한 근력을 꾸준히 훈련하면 될까? 문제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 모르겠고 일단 달려 봐? 달리다 보면 하고 싶은 게 생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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