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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Feb 23. 2022

제 전완근 만져 보실래요?

설재인 작가의 <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을 읽고


“만약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내가 남자라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

 가끔 이런 상상을 할 때가 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나  영화 <내 안의 그놈>처럼  다른 사람의 몸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 성별이 바뀌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설재인 작가의 <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주인공 33살의 엄주영은 막걸리를 마시다가  평행세계로 들어간다. 얼떨결에 들어간 이 세계에서 엄주영은 남자이다. 얼핏 두 세계는 똑같아 보이지만 주인공의 성별 차이만큼 다르게 굴러간다. 여자 엄주영은 사회고발 프로그램 작가이고 남자 엄주영은 전과 없는 범죄자로 개차반, 양아치, 망나니이다. 같은 부모 아래 태어나 같은 동네에서 자랐지만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다. 형제자매를 봐라. 하지만 가정폭력의 목격자이면서 피해자이기도 엄주영은 한 명은 구원자, 다른 한 명은 망나니로 성장하는 것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다를까.


“선천적으로 힘이 달리니끼 나쁜 짓을 못하잖아, 저절로 착해졌어. 이러고 싶지 않은데.”

“너는 어떻게 살았냐? 그 화를 다 어떻게 참아냈어? 복수하고 싶고, 누구든 괴롭혀서 억울하고 불행한 마음을 풀어내고 싶은 충동을 어떻게 참았냐고.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다른 집은 안 그러는데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할까? 그런 마음이 들면 아무거나 다 부수고 싶어 졌는데. “

여자 엄주영은 자신이 남자로 태어났으면 집에서 보고 배운 아버지의 폭력을 답습했을지도 모르지만 힘이 세지 않은 여자로 태어나 천만다행으로 착하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남자 엄주영은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는 빌붙고 약한 사람은 괴롭히고 때리고 싶으면 때리며 살고 있다.


두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성장한 이유를 타고난 근력과 뼈대 차이로만 설명하고 끝내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찜찜하다. 두 사람의 엄마 배중숙씨도 말하지 않았나. 나쁜 사람으로 안 키우려고 기를 썼을 거라고.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이 그랬을 거다.  두 사람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아서 그런가. 신체적 차이가 전부인 것처럼 보여 납득이 잘되지 않는다. 내가 읽어내지 못했나? 딱 하나 인상에 남는 것은 어린 여자 엄주영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차려준 은빈 엄마이다. 옥상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기 쉽지 않다. 어린 남자 엄주영은 은빈 엄마 같은  따스한 어른을 한 번이라도 만난 적이 없나. 그랬나.


그래도 이 작품은 통쾌하다. 여자들을 착취하는 남자 엄주영과 양아치 무리들을 여자들이 힘을 모아 물리친다. 역시 신체적 힘이 다가 아니다. 여성들의 연대에 멋진 남자 어른의 도움과 남자 엄주영의 반성도 있다. 그래서 또 통쾌하다. 양아치 개망나니들은 일망타진되고 남자 엄주영은  죄지은 대가를 치르고 개과천선한다.


더불어 통통 튀는 매력이 넘치는 작가의 문장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지지난 계절에 제사 지내려고 둥그렇게 윗부분의 껍질을 깎아놓고는 잊은 채 방치한 사과 같은 얼굴, 합격 목걸이를 주려고 안달이 난 선배 래퍼 같은 모습, 축 늘어진 팔다리에 기합이 번쩍 들게 하는 달디 단 커피, 앞날을 뻥 뚫리게 할 것 같아 힘을 내게 하는 기다란 테트리스 블록 등등 재미도 있고  찰떡처럼 상황을 설명한다.  그리고 여자 엄주영은 툭하면 자신의 전완근을 만져보라고 한다. 선천적으로 힘이 달린다고 인정해놓고는 근육 자랑을 하는 게  재미있으면서도 궁금했다.  왜 이두박근이나 삼두박근이 아니고 전완근일까?  전완근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근육인가.


전완근은 흔히 말하는 팔뚝에 해당하는 근육으로 악력과 관계가 깊다. 악력은 운동과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병뚜껑을 열지 못해 땀을 삐질삐질 흘렸던 기억이 난다. 악력과 전완근이 약해서 그런 거다. 전완근이 무엇인지 알고 나니 “제 전완근 만져보실래요”는 여자들이여 힘을 키우라는 선언으로 들린다.  그래야  자신도 지키고 손을 꼭 잡고 서로서로를 지킬 수도 있는 거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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