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가 좋아요
친구가 물었다. ‘너의 인생음식은 뭐야?’ 세상에나. 질문을 받자마자 마들렌이 떠올랐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무의지적 기억이니 어쩌고 저쩌고 했던 마들렌 말이다. 프루스트에 의하면 ‘무의지적 기억은 맛, 소리, 냄새 등 현재의 어떤 감각과 일치하여 떠올리는 과거의 기억’이다. 이 문구가 좋아서 밑줄 짝 긋고 돼지꼬리까지 붙였던 기억이 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밥보다 빵이 더 좋은 빵순이이지만 마들렌을 딱히 더 좋아하지 않는다. 프루스트처럼 마들렌을 홍차에 찍어 먹으면 떠오르는 기억도 없다. 뜬금없이 마들렌이 먹고 싶은 적도 없다. 마들렌이 내 인생음식일리 없다. 도대체 왜?
먹는 행위를 즐기지 않는다. 배고프지 않으면 된다. 이쯤 말하면 듣는 사람들은 이런 상상을 하더라. 입맛이 까탈스러운 말라깽이구나. 친정엄마에게 ‘네가 빵을 좋아해서 빵빵하다’라는 걱정을 듣고 살았다. 뚱뚱한 것은 아니고 통통하다고 소리에 힘주어 외쳐본다. 믿거나 말거나. 맛집에 관심 없고 잘 믿지도 않는다. 남이 해주는 밥이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며, 그저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래서인가 인생음식을 묻는 질문에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 좋아. 이번 기회에 나의 인생음식을 정의해 보면 되겠군!’
살면서 음식 관련 에피소드들을 차근차근 하나하나 떠올려 보아야겠다. 며칠 전에 시누이께서 생닭 한 마리를 주셨다. 시누이는 해 먹을 시간도 먹을 사람도 없다면서 지인이 주신 닭을 우리에게 넘기신 것이다. 맛있게 백숙 만들어 먹고 더위에 지치지 말라나. 에구머니나. 복날에 삼계탕 끓이지 않게 된 것도 오래되었건만. 이게 뭔 일인가. 닭의 상태가 어마무시하다. 삼계탕 가게나 마트에서 볼 수 있는 닭과 다르다. 필시, 이 닭은 집에서 키우던 닭이렸다. 닭다리 하나만 해도 우리 세 식구는 배부를 것 같은 느낌이다. 장만하느라 바들바들거리고 땀을 삐질찌질 흘리며 입은 투덜투덜거리며 닭을 푹 고아 남편과 아이에게 먹였다. 인생음식을 찾아햐 하는 판에 나는 먹지도 않은 백숙이 가장 먼저 생각날 것은 뭐람.
“안돼! 좋은 기억을 떠올려야 해.”
백숙에 이어 음식을 만들며 고생했던 것, 실수했던 것들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떠오른다. 에구 민망하여라. 신혼 때 충분히 불리지 않아 당면이 질겼다. 남편 말에 의하면 철사보다 더 질겼다는데, 그 잡채를 먹고 남편은 잡채를 오랫동안 먹지 못했다. 요리를 좋아하지 않고 잘하지 못한다. 못해서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결혼하고 이제껏 밥은 어떻게 해 먹었나 몰라.
“첫째 아이는 할머니표 곰국, 둘째 아이는 과천의 원주 추어탕”
우리 아이들의 소울푸드다. 힘이 없거나 마음이 심란하거나 으싸으싸 하고 싶을 때 먹으면 기운이 난다나. 친정엄마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마당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곰국을 고았다. 맛없을 수가 없다. 둘째 아이는 고등학교 시험기간이었나? 감기기운이 있을 때였나? 추어탕을 먹고 기운을 차린 적이 있다. 아이들의 소울푸드가 엄마가 해준 음식이 아닐 수 있다?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남편은 가끔 나를 놀린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요리를 잘 못해서 맛있는 것도 못 먹고,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지 못하고 자라서 안 됐다나. 친정엄마는 이제는 곰국을 끓이지 못한다. 과천의 원주추어탕은 문을 닫았다. 흠하하하. 아이들의 소울푸드를 내 음식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과연 바꿀 수 있을까?
잠깐, 인생음식과 소울푸드는 다른 의미인가? 같은 뜻인가? 아리송하다. 네이버 지식인에게 물어보고 찾아보니 인생음식은 ‘자신이 최고로 꼽는 음식, 인생에서 꼭 기억하고 싶은 음식’을 의미한다. 원래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전통요리를 의미하는 소울푸드는 우리나라에서는 ‘영혼을 울리는 음식, 위로가 되는 음식’으로 바뀌어 사용된다. 자신이 최고로 꼽는 음식과 영혼을 울리는 음식은 같을 수도 다를 수 있겠다. 음식과 관련된 기억들이 몇 가지 떠오르긴 하는데 소울푸드나 인생음식으로 부르기는 2% 부족한 느낌이다. 이 나이 먹도록 소울푸드도 인생음식도 없다고 생각하니 잘못 살았나 싶은 마음이 든다. 어이구.
외식 메뉴는 거의 남편과 아이가 정한다. 나는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지만 내가 먹자고 하는 김밥과 떡볶이는 번번이 퇴짜다. 오오오~ 맞다. 김밥과 떡볶이! 나는 김밥과 떡볶이를 아주 매우 엄청 좋아한다. 쌀떡볶이와 밀떡볶이를 가리지 않는다. 국물떡볶이도 좋다. 치즈떡볶이도 좋다. 그러고 보니 ‘인생음식으로 남자들은 돈가스와 제육볶음, 여자는 떡볶이로 꼽는 경우가 많다.’는 글을 sns에서 본 적이 있다. 떡볶이 재료는 우리 집 냉장고에 항상 준비되어 있다. 어쩌다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떡볶이에 얽힌 특별한 추억도 없다. 그냥 좋고 맛있다. 공부 마치고 학교 앞 분식집에서 , 즉석떡볶이 가게에서,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틈만 나면 먹은 기억뿐이다. 내 고향 대구에서 유명한 납작 만두를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떡볶이야, 너를 나의 인생음식으로 임명한다. 근데 말이야. 요즘 가게에서 파는 떡볶이는 너무 맵더라. 매운 떡볶이는 나는 좀 별로야. 아무리 내가 너를 좋아해도 아닌 것은 아니야. 암튼 그래도 나는 떡볶이가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