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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Sep 05. 2024

나는 밥 하다가, 울컥

박찬일 작가의 <밥 먹다가, 울컥>을 읽고


”엄마가 집에서 안 보이면 가출한 줄 알아라. 밥.하.기.싫.어.서“

고온다습했던 여름 어느 날, 아이에게 한 말이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밥 하는 것이 힘들다. 선풍기를 틀어도 에어컨을 켜 놓아도 한 끼 밥상을 차리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젖었다. 가스레인지 말고 인덕션을 이용하면 덜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기 시작하면 나는 선풍기 앞에 서서 열을 식혔다. 밥을 먹지 않고 살 방법은 없을까?  식사 대용 알약 하나씩 먹으면 안 될까?


박찬일 작가의 <밥 먹다가, 울컥>을 읽는다. 지난번에 인생음식을 묻는 친구의 질문을 받았을 때도 ‘먹는다는 것’에 얽히고설킨 경험이나 추억보다 밥을 하는 행위에 대한 힘듦이 먼저 떠올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야말로 ‘밥 하다가, 울컥’이다. 오늘은 뭐해먹지 고민하다 울컥, 자꾸만 올라가는 식재료 가격에 울컥, 양파를 까다가 울컥, 파를 썰다가 울컥, 딴생각하다 홀라당 태워버린 찌개 냄비 앞에서 울컥, 생각만큼 맛이 나지 않는 음식에 울컥, 정성껏 차린 밥상 앞에서 투정을 들으며 울컥, 가족들의 입맛에 맞지 않아 남은 음식 처리를 고민하다 울컥, 결국 버리지 못하는 내가 다 먹어야 하는 사실에 울컥울컥 한다.


“박찬일은 우리에게  ‘먹는다는 것’은 시간과 경험을 나누고 삶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책을 통해 말하고 있다.”


변영주 영화감독의 이 작품을 읽고 남긴 말이다. ‘먹는다는 것’은 좋다. ‘함께 먹는다는 것’은 따스하다. 사람들이 함께 먹고 부대끼며 사는 이야기는 대개 감동이라는 양념이 기본으로 깔려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오롯이 ‘먹는다는 것’이 가져다주는 이야기만을 전하려고 했다면 나는 크게 감동받지 않았으리라. 작가 이전에 셰프라서 그런가. 그는 밥 하는 힘듦을 안다. 박찬일 작가는 작업장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성게를 손질하는 해녀의 모습이 떠올라 보드랍고 고운 성게가 목에 걸리는 사람이다. 돌솥비빔밥 식당에서 무거운 돌솥을 들다 관절에 무리가 생긴 아주머니들 이야기는 안타깝다. 파스타 가게의 직원들은 남은 식재료로 (다양한 창의적인 ) 파스타를 해 먹는 게 일상이고 피자 가게도 그렇다. 남은 식재료를 버릴 수도 없고 원가 절감도 해야 하니 직원들이 먹을 수밖에 없다. 숯불만 건강에 안 좋은 줄 알았는데 프라이팬과 튀김기에서 만들어지는 유증기도 만만찮단다. 냉장고도 가스레인지도 없고 부엌도 지금 같지 않았던 시절이야기는 숙연해진다. 석유곤로 하나로 온 가족의 식사를 차렸던 우리 엄마 생각이 나서 또 울컥한다.


편리한 도구가 갖춰진 부엌에서 내가 엄살이 심한가? 밥 하는 것은 우리 가족 내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니 소홀할 수 없다. 그래도 덥고 힘든 걸 어쩌라고. 가끔씩 요리를 하던 남편과 아이도 여름에는 꿈쩍도 안 한다. 그들도 더위에 요리하고 싶지 않은 거다. 대신 설거지를 도맡아 하고 내가 너무 힘들어한다 싶으면 슬쩍 외식을 하자고 한다. ( 식당 종사자 여러분들 덕분에  이 더위에도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밥 안 먹고 살 수는 없고, 밥 대신에 약 먹는 것은 더 싫고 우짜노. 더위가 꺾이면 나아지리라.


박찬일 셰프의 <밥 먹다가, 울컥>을 읽고 나는 ‘밥 하다가, 울컥’ 한 이야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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