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 패치 완료!
문경 사과 축제가 끝나고 며칠 뒤에 친구들이 놀러 왔다. 사과축제는 문경새재 도립공원에서 해마다 10월에 열리는 문경시의 잔칫날이다. 트로트 가수들이 뽕짝뽕짝 노래도 부르고 , 문경시민의 노래자랑도 있고, 사과 품평회도 있고, 사과로 만든 다양한 먹을거리도 맛볼 수 있다. 친구들이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많은 사과 축제 때 놀러 왔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친구들이 문경으로 놀러 온다고 하면 어디로 놀러 가야 할지, 어떤 음식을 소개해야 할지,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할지 신경이 쓰인다. 친구들은 문경 여행이 목적이 아니라 나를 보러 오는 것이니 특별히 준비하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내 나름대로 계획을 세운다. 지난봄에 놀러 온 친구들은 폭우 때문에 꼼짝을 못 하고 1박 2일 동안 집에서 이야기만 나누다가 돌아갔다. 서로 알고 지낸 30년 사는 물론이고 미래 계획까지 싹 다 훑었다. 모두들 즐거워했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집에만 있는 계획을 세울 수는 없다. 폭우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멀리서 문경까지 왔는데 우리 동네를 조금이라도 보여주고 싶다.
일단 나는 문경새재로 친구들을 데리고 간다. 문경새재 산책길은 산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편평하고 고르고 넓고 경사가 완만하여 걷기 좋다. 걷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한 길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어 친구들의 성향에 상관없이 데려가기 적당하다. 각자의 상황에 맞춰 걷다가 되돌아오면 그만이다. 길을 걷다 지치거나 지루하다 싶을 때면 희한하게 성황당, 조령원터, 왕건교, 교귀정, 산불됴심비, 문경새재아리랑비 같은 기념물이 보인다. 기념물에 얽힌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다. 그래도 걷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우면 드라마 세트장에서 놀면 된다. 산책길은 편안하지만 본래 문경새재 옛길은 험하다,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만들어진 고갯길로 영남지방에서 서울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이다. 과거 보러 가는 선비도, 보부상도 모두 이 고갯길을 넘어야 했다. ‘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의미가 있다.
이번에도 친구들과 함께 문경새재 산책을 했다. 산책을 마치고 내가 좋아하는 밥집에서 밥을 먹었다. 밥을 먹은 후 우리 집으로 가서 차를 마신다. 내가 안내하는 문경 여행의 1일 차 코스이다. 그런데 친구들이 문경사과를 사고 싶다며 나보고 안내를 하라고 했다. 나는 하나로 마트에서 한 봉지씩 사 먹는데? 우리 동네 과수원은 아직 사과를 안 따던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다행히 문경새재 인근 길가에는 사과 농장에서 직접 운영하는 판매 천막이 많이 있었다. 시식용 사과를 넙죽넙죽 받아먹으며 사과를 구경했다.
“올해 비가 많이 와서 사과 농사 잘 안된 거는 알고 있지? 사과 값이 어마 무시해.”
“요거는 양광, 노란색은 시나몬 골드, 그리고 문경사과의 대표, 감홍이야.”
“감홍 사과 대개 맛있어. 달고 아삭아삭해.”
“수분이 많아서 그런가, 오래 보관하기는 힘들어. 배처럼 말이야.”
“요즘 많이 수확한대. 지금이 가장 맛있을 때다 이거지.”
“그치 비싸지? 원래도 부사에 비해 가격이 비싸. 나는 주위에서 몇 개 얻어먹은 게 다야.”
“부사는 11월은 되어야 딴대.”
“그래도 문경에 왔는데 감홍을 한 번 먹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감홍 사. 빨리 먹어야 하니까 많이 사지는 말고. 오래 두면 맛없더라.”
문경에 살며 주워들은 사과 지식과 내 경험을 풀어 친구들이 감홍 사과 2 상자를 사게 만들었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가끔 추임새를 섞던 농장 주인이 나에게 말했다. 과수원에서 사과 따라, 판매하라, 자신이 너무 바쁘다며 사과판매 아르바이트 할 생각 없냐고 물었다. ‘얘가 문경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과도 좋아하고 일은 잘할 것’이라고 친구들도 옆에서 부추겼다. 급기야 농장 주인이 연락처를 남겨 놓고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와 농장 명함을 보여주며 남편에게 자랑했다. 남편이 웃었다. “문경 사람 다 되었네? 그런데 집에서 판매장까지 어떻게 가려고? 나는 매일은 못 태워준다.” 쳇, 잠깐 솔깃했으니 나도 자신은 없다. 뭐. 그래도 나 말이야, 사과 농장에서 스카우트 제의 받은 여자라고 자랑은 하고 싶다. 이런 것을 현지인 패치 완료라고 해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