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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Oct 11. 2024

우리 집에 대하여

‘시골에 새 집을 지어 이사한다.“ 이렇게 결정하고 나서 집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구해줘 홈즈’와 ‘'EBS 건축탐구 집’ 같은 TV 프로그램을 유심히 보고, 유튜버들이 소개하는 집 구경도 많이 했다. 건축사무소가 운영하는 사이트를 방문해서 집의 구조 관찰도 했다. 우리 집을 짓기로 계약한 건축사가 지은 집도 몇 군데 둘러보기도 했다.


시골로 이사하지만 시골이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살까 보다 어떤 집에서 살 것인가를 더 많이 고민했다. 우리 집을 방문한 사람들이 많이 했던 질문을 토대로 우리 부부가 가진 집에 대한 생각을 문답 형태로 정리해 본다.


집이 꽤 크고 높네요. 2층 집인가요?

아니요. 1층 집입니다. 천정을 높게 하고 싶었어요. 저는 낮은 천정이 너무 답답했어요. 가구를 들여놓아도 꽉 차 보이지 않는 탁 트인 느낌을 원했어요. 사선으로 기울어진 기와지붕을 그대로 천정으로 살렸으니까 최고 높이는 5m가 넘어요. 낮은 쪽도 4m는 될 것 같아요. 대신 안정감이 필요한 방과 부엌은 좀 낮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계획에 없던 다락방이 덤으로 생겼어요. 건축사님이 그 공간을 비어두기 아깝다고 하시면서 제안하셨죠. 나이 더 들면 다락방 오르락내리락할 일 없다고 거절했다가 만들었는데 잘 만든 것 같아요. 집에 놀러 온 아이들이 엄청 좋아해요.


가정집에 이런 공간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무엇을 위한 공간이죠?

우리는 작업실이라고 불러요. 서재이면서 남편의 일터이고 손님맞이 거실이 되기도 해요. 제가 서재는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책을 많이 읽지 않지만 책이 쌓여 있는 공간을 좋아하거든요. 책은 읽지 않으면서 도서관 서가를 어슬렁거리는 것이 한때 취미였어요. 여기에서 저는 책 읽고 글 쓰고 차 마시고 졸고 그래요.


IT 개발자인 남편은 집에서 일을 해요. (거의 안 하는 것 같습니다만) 조만간 IT개발에서 은퇴하고 다른 일을 할 계획이라 공부할 공간이 필요하죠.


아파트에 살 때 손님에게 생활공간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것에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엄청요. 저희 아파트가 워낙 좁아서 그랬겠지요? 아무튼 손님이 오면 손님과 아무 상관없는 가족들의 동선이 꼬이고 생활이 영향을 받는 것이 너무 싫었어요. 거실에 손님이 계시면 화장실 가는 것도 신경 쓰이고 그렇잖아요? 생활공간과 분리된 손님맞이 거실이 절실했어요. 작업실 문만 닫으면 완벽하게 분리되죠. 출입문도 현관문과 별도로 만들었어요. 별채이지만 연결되어 있는 공간이죠.


그러다 보니 이 공간이 커졌어요. 10평쯤 돼요. 꽤 넓죠? 층고가 높아 더 넓어 보이는 효과도 있어요. 차를 준비하는 탕비실과 화장실도 가까이 두어서 자가 격리도 가능해요. 격리 공간 필요하면 말씀만 해요. 빌려드릴게요. 하하하. 친구들이 놀러 오면 가족들 눈치 보지 않고 밤새 놀아도 돼요. 겨울에는 화목난로 앞에 앉아 불멍도 하고요. 살아보니 이 공간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저희 부부는 이곳에서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요.


그렇군요. 현관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생활공간과 작업실로 분리된 거네요.

맞아요.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오면 왼쪽은 생활공간, 오른쪽은 작업실로 분리되어 있어요. 생활공간에는 방, 거실, 화장실, 부엌, 다용도실과 작은 창고가 있어요. 아파트와 똑같죠? 대신 우리 가족의 생활에 최대한 구조와 동선을 맞춰지었어요. 그리고 멋진 창밖 풍경이 덤으로 생겼답니다. 시골이니까요.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이 눈에 쏙 들어오죠. 지난겨울에 본 설경은 정말이지 아름다웠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 1년 내내 계절마다 변하는 풍경 덕분에 지루하지 않아요.


부엌은 작게 만들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랬죠. 밥 하는 게 지겹기도 하고 점점 간소한 식사를 하게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랬어요. 생각이 바뀌었죠. 예전 집의 부엌은 딱 한 사람만 일할 수 있는 구조였어요. 2명이 나란히 설 수도 없는 공간에서 두 사람이 동시에 뭔가를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었어요. 제가 부엌에서 혼자 밥하고 설거지하며 얼마나 외로웠게요? 제가 요리를 잘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요리에 흥미를 잃게 된 데는 부엌 구조의 영향도 있어요. 최소 2명이 동시에 부엌일을 할 수 있는 크기는 되어야 하겠더군요. 내가 야채를 다듬는 동안 남편은 달걀을 구우며 식사 준비를 함께 하면 좋잖아요. 그래서 처음 생각보다 부엌이 커졌어요. 원하는 그림이 조금씩 그려지고 있고요. 헤헤헤. 칠칠하지 못한 제가 늘어놓아도 지저분한 것이 잘 보이지 않는 효과도 있더군요.


시골집 치고는 마당이 좁네요

그죠? 저도 종이 위에 그려진 설계도로 보며 가늠한 것보다 훨씬 좁아서 깜짝 놀랐어요. 땅이 마을 길에 많이 들어갔고요. 경사진 땅이라 계단식 마당이 되어 조각조각 났어요. 아휴. 그래서인가 실제 넓이보다 더 좁게 보이기도 하고요. 아무튼 보편적인 시골집에 비해 마당이 좁은 것은 맞아요. 저희는 마당 있는 집을 원했지만 넓은 마당을 고집하지 않았어요. 작은 마당이라도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죠. 맨발로 걸을 수 있는 마당이면 충분하다 했어요. 텃밭도 3평인데 저희에게 딱 맞아요.


저희는 바깥 활동을 즐기지 않아요. 집돌이와 집순이죠. 여행도 잘 안 가요. 저희들이 낯선 시골에서 심심할까 봐 문경새재 놀러 가자, 나물 캐러 가자, 밤 주우러 가자, 감 따러 가자 등등 집밖으로 불러내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요. 저희는 하루 종일 집안에서 빈둥거려도 심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멍 때리는 것도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그런 우리 부부에게는 집이 참 중요하죠. 한정된 땅에서 우리가 필요한 크기만큼 집을 짓고 남은 땅이 마당이 되었죠. 좁을 수밖에요.


은퇴 후 귀촌하는 시골집은 작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아무래도 가족 수도 적고 난방비가 걱정이고 청소도 힘들고 나이 들면 아무래도 움직이는 게 힘드니까요.


난방비는 좋은 단열재를 두껍게 시공하는 걸로 해결이 많이 된 것 같아요. 저희 집 벽이 상당히 두꺼워요. 밖에서 보는 것보다 집안이 그리 넓지 않은 게 벽의 두께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집을 정남향으로 지었더니 햇볕이 난방의 절반은 감당해 주는 것 같아요. 해가 떠서 집안으로 햇빛이 들기 시작하면 따뜻해요.


청소는 여전히 걱정이지만 집이 넓어서 그런가. 더럽고 어질러 놓은 게 티가 별로 안 나요. 적당히 대충 하며 살고 있어요.


시골로 간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잘 살고 있네요. 좋아 보여요.

네. 좋아요. 시골 와서 딱 1년 살았어요.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시골이지만 저희 본래 모습을 잃지 않고 억지로 잘하려고 너무 애쓰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매일매일 따뜻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가까이 있으니 편안해요. 특히 남편의 건강이 좋아졌어요. 잠도 잘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던 남편이 시골로 오고 나서는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어요. 감사한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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