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10000!!
‘매일매일 만’으로 읽으면 안 된다. ‘매일매일 일십백천만!!’으로 읽어야 한다. 나의 새해 다짐은 늘 ‘매일매일 일십백천만!!’이다. 하루 만보를 걷고 하루 1000자의 글을 읽고 하루 100자 글을 쓰고 하루에 열 번 웃고 하루에 한 번은 착한 일을 하며 살자는 의미이다. 새해 다짐을 이렇게 정한 게 언제부터였더라. 몇 년 전 우연히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일십백천만 법칙’을 듣고 나서부터이다.
나는 꿈이 없다. 어릴 때는, 젊을 때는,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꿈이 있었다. 내가 열심히 해도 꿈이 반드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고 지레 포기, 꿈인 줄 알았는데 한낱 자본주의적 욕망 일뿐이라는 자각에 포기, 내 꿈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요구하기 싫어 포기, 그다지 간절하지 않고 게을러서 포기, 재능도 없으면서 황새 쫓다 다리 찢어지는 뱁새 같아서 포기, 이 나이에 어쩌고 저쩌고 나이를 핑계 삼아 포기 - 꿈을 꾸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하루하루를 알차고 즐겁고 뿌듯하게 살기로 했다. 책 읽고 일기 쓰고 적당히 운동하며 방긋방긋 웃으며 살아야겠다. 이런 하루가 모여, 시간이 쌓이고 쌓이면 뭔가 될지도 모르잖아? 이렇게 나의 새해 다짐은 ‘매일매일 10000!!’이 되었다.
쉬워 보였는데 쉽지 않았다. 착한 일을 매일매일 하는 것은 어렵다고 예상했다. 내가 놀부와 팥쥐 심보를 물려받지는 않았지만 엄청 착한 사람도 아니니까 말이다. 1000자의 글은 A4 용지로 1장이 채 안되고 책은 2쪽 남짓이다. 100자 쓰기는 4줄 정도 일기를 쓰면 충분하다. 이게 뭐라고 번번이 작심삼일이었다. 이럴 수가? 내가 뭐 남들처럼 하루 책 한 권을 읽자는 것도 아닌데? 숙제 검사받기 위해 일주일치 아니면 한 달 치 일기를 몰아 쓰던 버릇 때문인지 하루에 달랑 몇 줄 일기 쓰기도 번번이 미루기 일쑤였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운동은 말할 것도 없다. 웃을 일도 없는데 이유 없이 웃는 것도 잘 되지 않았다.
시골로 이사 왔다. 일상이 단순해진 만큼 ‘매일매일 10000!!’을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여전히 잘 되지 않았다. ‘매일매일 10000!!’에서 착한 일 대신 하루에 하나의 일만 하기로 했다. 남편과 나의 새로운 슬로건이 생겼다.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몸이 힘든 것도 모르고 계속 일만 하게 되었다. 이사 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몸을 움직여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일의 양을 가늠할 눈도 없으면서 시작한 김에 끝을 보자는 심정으로 일을 하다 보니 몸이 쉽게 상했다.
시골에서 단독 주택에 산다는 것은 은근히할 일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당만 해도 계속 일이 생긴다. 눈이 오면 눈을 쓸어야 하고 가을에는 낙엽을 쓸어야 한다. 비가 많은 여름에는 비설거지가 필요하다. 봄에는 꽃밭을 꾸며야 한다. 잔디를 깎아야 하고 틈틈이 풀을 뽑아야 한다. 텃밭농사도 농사다.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장작 정리를 했다. 주문한 장작을 싣고 온 트럭은 장작을 마당에 부려놓는 것이 전부다. 마당에 퍼질러진 장작을 하나씩 하나씩 쌓고 났더니 온몸이 지금도 욱신거린다. 그뿐인가. 화목난로 청소. 장 담그기, 유리창 청소, 데크 청소, 자질구레한 수리와 보수 등등 가끔이지만 해야 하는 일도 있다. 아파트에서는 하지 않았던 일이다.
매일매일 10000!! 착한 일 대신에 할 일을 하는 것으로 바꿔서 그런가. 어느덧 1년이 된 시골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해서 그런가. 여전히 실패하는 날이 많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숫자에 매여 안달복달했지만 이제는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다. 하루 만보를 걷지 못해도 조금이라도 걷고 운동했으면 됐다. 별로 웃을 일이 없었다 싶으면 혼자서 입 꼬리를 올려 웃는다. 1분이면 된다. 멋쩍지만 노력하고 있다. 아직 소리 내며 웃기는 안 되지만 억지웃음도 웃음이라더라. 하루에 한 가지 일만 하겠다는 다짐은 제법 잘 지키고 있다. 몸이 힘들어서 그렇다. 마지막으로 책 읽고 글쓰기는 욕심을 내고 있다. 시골에 살지만 농사나 정원 가꾸기 같은 바깥 활동에 큰 흥미가 없다. 텃밭과 꽃밭은 아주 작게 할 생각이다. 대신 책 읽고 글 쓰는 시골할머니로 우아하게 늙어가고 싶다. 작심삼일로 끝나는 새해 다짐이 아니라 이제는 나의 리추얼과 일상으로 만들고 싶다. 그래야 나의 시골생활이 성공할 것 같다.
나의 즐겁고 멋진 시골 생활을 위하여 매일매일 일십백천만!
2023년 12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