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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하지 않을 변명

by 송알송알


브런치 스토리 운영진이 보낸 알림

글쓰기 근육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알림을 받았다. 2주 넘게 새 글을 발행하지 않으면 브런치스토리 운영자가 보내는 위로인 듯 경고인 듯 협박인 듯 응원 같은 알림이다. 나는 종종 받는다. 매일매일 쓰는 분들도 많지만 나는 내 주제 파악을 하고 일주일에 한 편씩 나의 글을 발행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나는 펑크 대마왕이 된 것 마냥 번번이 글을 쓰지 못한다. 분량도 겨우 A4 용지로 1~2장 정도의 짧은 글을 쓰면서 말이다. 이러면 곤란하다. 왜냐하면 나는 글 쓰는 시골할머니로 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어휘력 부족하고 글 쓰는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고 주위에 무심하다 싶을 정도로 관찰력이 없는 내가 감히 글을 쓰겠다고? 뭐 어때. 글을 쓰는 동안, 글쓰기의 힘듦과 별개로 내 마음은 편안해지고 뿌듯한데 안 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마음먹고 결심하고 다짐했는데 번번이 농땡이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왜 이럴까? 생각을 해본다. 첫 번째, 글감이 없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 씨만큼이나 내 일상은 규칙적이고 단조롭다. 어제를 복사하여 붙이면 오늘이 된다. 내일도 오늘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나는 ‘라이프 분야 크리에이터’이다. 어느 날 갑자기 브런치 운영진이 나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내 글의 대부분이 일상 기록이라 그렇다, 시골살이 첫 해는 보는 것마다 신기하고 놀랍고 감동이더니만 3년 차인 요즘은 그냥저냥이다. 3년 일기장을 쓰고 있는데 쓸 때마다 흠칫한다. 쓰려고 했던 일기 내용이 작년도 일기에 고대로 벌써 쓰여있다. 작년 이맘때 피었던 낮달맞이꽃이 며칠 전부터 하나 둘 피기 시작했다. 작년에도 예뻤고 지금도 예쁘지만,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단조로운 일상보다 말라붙은 내 감성이 문제인가? 젠장.


두 번째, 바빠서 글 쓸 시간이 없다. 특히 4월은 제사, 봄맞이 청소, 손님맞이, 건강 검진, 집안행사, 텃밭 농사 시작 등등 일이 많았다. 가끔 외식이나 매식을 하지만 하루 삼시 세끼를 차려 먹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는 충분히 바쁘다. 삼시세끼 그까이 꺼? 이만큼 살림을 했으면 뚝딱뚝딱 몇 번에 착착착 밥상이 차려질 만도 한데 나는 그게 잘 안된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내가 마음을 콩밭에 두고 ( 콩밭 없음! ) 집중과 정성을 들이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암튼 밥 해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쁜데 창고 정리, 마당 청소, 풀 뽑기 등등 몸을 써야 하는 일이 추가되면 몸은 고되고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글쓰기는커녕 책 읽을 힘도 남아있지 않다. 그러고 보니 책과 거리를 둔 지도 꽤 되었다.


세 번째, 글쓰기 근육이 좀체 생기지 않는다. 글감도 없고 아무리 바빠도 글쓰기 근육이 있다면 문득 떠오른 문장으로 한 편의 이야기를 쓰고, 풀을 뽑다가 우연히 마주친 벌레와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즐겁게 보낸 시간을 자연스럽게 글로 엮을 수도 있지 않을까. 문득 문장이 떠오르지도 않지만 어쩌다 문장 하나가 떠올라도 다음이 쉬이 이어지지 않는다. 오~ 상상력이 부족하다. 마당과 텃밭, 집안에서 벌레를 만나면 소리나 빽빽 지르지, 벌레들과 함께 하는 상상의 나래는 어림도 없다. 놀래서 지른 고함 때문에 그나마 있던 글쓰기 근육이 손실될 것 같다. 친구들과 먹고 놀고 나눈 이야기를 글로 썼다고 하자, 그 글을 일기장에 두지 않고 공공의 공간에 발행하려면, 내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끝내지 않고 일반화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사적 글쓰기에 머물지 않는다. 나는 이게 어렵다.


네 번째, 목표가 없다. 글쓰기를 해서 딱히 뭘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다. 목표가 없으니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아도 입안에 가시가 돋치지도 않더라. 출간도 딱히 하고 싶지 않다. 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러워 아니길 바란다. 나는 소심한 관종이다. 나무를 잘라 종이를 만들어 책을 출간할 만큼 내 글이 좋은 글인가? 아직은 절대 아니다. 글을 쓰면서 부족한 어휘력도 조금씩 느는 것 같고, 글감을 찾기 위해 애쓰다 보니 없던 관찰력도 생기는 것 같다. 게다가 머리는 생각하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활동이니 치매예방도 될 것 같다. 무엇보다 글을 쓰는 시간이 힘들면서도 좋다. 엄청나게 큰 일도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 위로를 받고 , 사소한 일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글쓰기를 하지 않을 변명을 정리하던 중이었는데, 글쓰기가 좋단다. 아이고야. 그렇다. 나는 계속 글 쓰련다. 느릿느릿 게으르게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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