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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은 사랑을 싣고

by 송알송알


결혼 전에 밥을 해 본 적이 없다. 라면을 끓인 적은 있었나? 라면을 좋아하지 않는 내 식성으로 추정해 보면 없었을 것 같다. 어릴 때는 어리다고, 조금 커서는 공부한다는 핑계로 부엌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고추 달린 아들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런 내가 남이 먹을 라면을 끓였을 리 만무하다.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나니 내가 밥을 하고 있었다. 어라? 이게 무슨 일이야. 집안일 분담을 의논할 때 남편이 그랬다. 자신은 충분히 잘하니, 잘할 때까지 내가 밥을 해야 한다나. 그때나 지금이나 남편의 음식 솜씨가 나보다 만 배쯤 낫다. 끄덕끄덕. 남편의 꼼수 같은 제안에 동의하고, 밥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반찬 투정을 안 한다. 밥을 할 때마다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맛있다는 어머니들의 말씀이 뼛속 깊이 쏙쏙 새겨졌다. 분명 요리책에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 맛이 없더라. ( 아직도 이해불가 ) 똑같은 음식인데 할 때마다 맛이 다르더라. ( 허허 그것 참 요지경이다) 고작 한 접시의 음식을 만드는데 시간도 꽤 들더라. 암튼 그런 상황인데도 나는 왜 그렇게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집밥을 먹이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요리 연습하려고 그랬나? 대책 없이 용감했고 무대뽀였다.


신혼여행 다녀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사동기 모임을 집들이 겸해서 우리 집에서 했다. 집들이 메뉴가 미역국, 생선구이, 빈대떡, 돈가스 등등 2주 동안 내가 한 번씩 해 본 반찬들로 상을 차렸다. 양 조절을 못해서 밥은 설익고 반찬은 부족해서 냉장고에 있던 먹을거리를 탈탈 다 털어먹었다. 이런 집들이 상차림은 나도 동기들도 처음이었으리라. 멀리서 출장온 남편 친구들과 김밥을 함께 싸 먹은 적도 있다. 밖에서 먹고 오겠다는 남편과 친구들을 굳이 집으로 불러서, 달랑 김밥만 말아 주었다. 나는 이미 준비된 식재료를 혼자 다 감당할 수 없어 그랬지만 그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라면도 같이 끓여 먹을 걸 그랬다. 생일날 혼자 있던 고향 후배, 카이스트 입학시험 보러 온 대학 후배들, 회사 기숙사에서 지내는 친구들 등등 밥도 제대로 못하면서 기회만 생기면 밥 먹으러 오라고 불렀다. 나는 먹는 것을 딱히 즐기지도 않는데 왜 그랬을까?


얼마 가지 못했다. 맛없는 음식을 손님에게 내놓는 것이 민망해졌고 좀체 늘지 않는 솜씨에 지쳤고 힘들었고 육아로 시간도 없었고 무엇보다 퇴사 후 많은 관계를 정리했다. 더불어 사회 분위기도 많이 변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학부모 모임을 집에서 가끔 했다. 집에서 모여 이야기를 하다가 밥때가 되면 밥도 함께 먹곤 했는데 고학년 때부터는 그런 경우가 없었다. 멀리 흩어져 사는 친구들이야,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든데 함께 집밥을 먹을 기회는 거의 없다. 언제부터인지 일가친척들이 모여도 예전처럼 집에서 지지고 볶고 끓이지 않고 외식을 하고 집에서 다과를 나눈다. 외식이 힘들면 배달음식을 이용하면 된다. 이런 추세는 음식 솜씨가 좋지 않은 나에게 참 다행이다.


이제 다시 우리 집을 방문한 손님들과 함께 집밥을 먹는다. 이게 다 시골살이 덕분이다. 우리 집까지 음식 배달이 안되고 밖에서 먹고 다시 들어오기가 귀찮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서툰 솜씨지만 ( 예전에 비하면 장금이라 할 수 있다.) 따뜻한 밥을 대접하고 싶어서 그렇다.


얼마 전에 친구들이 1박 2일로 다녀갔다. 그들과 저녁, 아침, 점심에 간식까지 해 먹었다. 봄나물이 지천이라 함께 다듬어 무치고 볶았다. 나물을 다듬으며 깔깔깔, 다듬은 나물을 씻으며 깔깔깔, 부침개를 뒤집으며 깔깔깔 - 우리들 웃음을 양념으로 해서 그런가 맛이 참 좋더라. 손님 밥상 3끼를 어떻게 차릴까 싶었는데 함께 하는 데다 마침 요리 고수가 있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밖에서 먹어도 함께 한다는 것으로 좋았겠지만 집밥이라 더 좋았다. 재미있고 맛있고 행복한 밥상이었다. 더욱 친해진 기분이다. 이래서 한솥밥을 먹으면 없는 정도 생긴다고 하는 건가? 원래도 정을 주고받는 우리가 집밥을 나눴으니 더 사랑할 일만 남았다. 사랑해 친구들아.

간식으로 먹은 두릅전- 두릅을 좋아하지 않지만 함께 하니 이것도 맛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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