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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의 복수인가?

제비들이 우리 집 처마에 집 짓기를 시도하고 있다

by 송알송알

세 번째 봄이다. 봄이 오면 강남 갔던 제비들이 우리 집을 방문한다. 첫 해는 처마 밑을 기웃거리기만 했다. 제비가 집을 지을까 봐 조마조마했었다. 새집인데, 지은 지 몇 달 되지 않은 벽이 더러워지면 어떡하나 싶었다. 백 번 양보해서 벽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새똥으로 지저분한 바닥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제비가 집을 짓는 이유는 알을 낳고 품어 깨어날 아기새들을 위한 것이라고 들었다. 제비집은 아기새들이 날 수 있을 때까지 부모를 기다리며 하루 종일 있는 곳이라는 말이다. 아기새들이 집에서 하루 종일 뭘 할까? 먹고 싸고 먹고 싸고 한다. 아기새들이 싼 똥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새집 바닥을 통과하여 바닥으로 철퍼덕 떨어진다. 재수 없으면 때마침 데크에 서있던 내 머리 위에 떨어질 수도 있다. 우리 집 화장실 청소도 하기 싫어 미루기 일쑤인데 제비 화장실까지 치워야 한다고? 흥부는 제비 다리를 고쳐주지 않았어도 복을 받았을 게다. 제비는 이쁘고 귀엽지만 우리 집에는 집을 짓지 않기를 바랐다. 내 이기적인 마음을 눈치챘는지, 이 집 처마에 집을 지으면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제비들이 몇 번을 들락거리고 기웃거리기만 하고 집은 짓지 않았다.


작년 봄에도 제비들이 왔다. 일찌감치 탐색을 끝내고 전등갓 위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전기가 흐르는 곳인데 위험하지 않나? 전깃줄 위에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는 애들이니 상관없으려나? 고깔 모양 위가 아니라 편평한 데 집을 지어야 하지 않나? 제비가 전등 위에 집을 지어 살기 시작하면 우리는 전등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가? 별별 걱정을 다 하며 지켜보았다. 전등갓 위에 집 짓기가 쉽지 않은지 진척이 없어 보였다. 제비들이 없는 틈을 타 슬쩍 보니, 진흙과 지푸라기 몇 개만 있었다. 집 짓기를 도와주고 새똥 문제도 해결할 겸해서 전등갓 위에 넓은 판자를 설치했다. 도움이 되려고 한 것인데, 제비들은 도리어 위협을 느꼈다. 그날 이후 제비가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첫 해는 심리적으로 막고 둘째 해는 물리적으로 집 짓기를 방해한 셈이다.


1년이 훌쩍 지나고 다시 봄이다. 2번이나 우리 집에서 집 짓기를 실패했으니 올해는 오지 않으려나? 웬걸 작년보다 더 부지런히 뻔질나게 들락거린다. 반가우면서도 심란하다.

“데크 바닥이 엉망이 되겠군. 에휴.”

“집에 사람이든 동물이든 들락거려야 좋은 거야. 너무 아는 척도 하지 말고 내버려 둬.”

“그래야지 뭐. 내쫓을 수도 없는데 내가 뭘 어쩌겠어? “

“참, 알아보니 제비는 보호종이래. 함부로 위해를 가하면 안 된대. “

“어쩐지. 요즘 제비가 잘 안보이더라. ”

”집 잘 짓고 잘 살다가 잘 돌아갔으면 좋겠다. “

”날씨 따뜻해져서 강남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것 아냐?”

“그런가? 하하하”


그런데 제비들이 이상하다. 동시에 보이는 제비는 2마리뿐이니 부부새가 살 집을 구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한채만 짓는 게 아닌 것 같다. 처마 아래 벽 여기저기에 진흙을 바르고 있다. 택지 개발을 해서 친구 제비들에게 분양을 하려고 하는 건가? 지금껏 가져온 진흙과 지푸라기 양을 보면 벌써 집 한 채는 짓고도 남을 것 같다. 왜 이럴까? 우리 집 외벽은 스타코 마감처리를 하여 매끈하지 않고 우둘투둘하다. 매끈한 벽보다 흙이 잘 붙을 것 같은데 아닌가? 며칠 사이에 벽이 낙서 가득한 칠판이 되었다. 제비들이 왜 이럴까? 혹시 지난 2년 동안 ( 고의는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 집 짓기를 못하게 막은 우리에게 복수하는 건가?


오늘도 제비는 부지런히 지푸라기를 물고 와서 벽에 붙인다. 여름이 오기 전에 집이 완성될까? 얼른 짓든가 집터가 아니다 싶으면 다른 장소를 알아봐야 할 텐데 말이다.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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