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싫어하는 말이 있는데 그 거를 딱 하잖아.
뭐, 내가 해도 그거보다는 잘하겠다?
그럼 왜 안 했어? 하셨어야지.
그렇게 잘할 것 같으면 지금이라도 시작해야지.
늦지 않았다고. 시작이 반이다.
좀. 제발 좀 하고 말해라. 좀. 어휴 진짜.
하여튼 입만 살아가지고.
지금 제일 잘하고 싶은 거는 선수 본인이라고.”
내가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의 한 장면이다. 펜싱 선수 나희도가 랩처럼 울분을 쏟아낸다. 드라마 장면은 이랬다. 1999년 삼성라이온즈와 롯데자이언츠의 플레이오프 7차전 경기가 끝난 직후 대구 어느 국밥집이다. 삼성을 1점 차로 꺾은 롯데가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한 직후였다. 롯데자이언츠의 연고지 부산이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지만 삼성라이온즈의 홈 ‘대구’였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손님들은 아깝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해서 한 마디씩 투덜투덜거린다. 그러다가 어떤 아재가 그랬다. “내가 해도 더 잘하겠다.” 이 말에 나희도 선수가 발끈했다. 같이 밥 먹고 있던 백이진 덕분에 다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희도 선수는 마음이 많이 상한 것 같았다.
“내가 해도 더 잘하겠다”
나도 야구 볼 때 가끔 하는 말이다. 그림처럼 찌그러진 프라이팬을 들고 내가 더 잘 치겠다고 했고 , 안타를 치고 2루를 밟지 않고 지나가는 바람에 아웃당한 선수에게 소리 질렀고, ‘easy ball’이라고 부를 정도로 잡기 쉬운 공을 놓친 선수를 보았을 때는 어이없어 화냈고, 심판들의 오심에 화가 나서 투덜거렸다. 차라리 내가 야구하랴? 얼마 전 3월 21일 엘지와 SSG의 시범경기를 보면서도 이 말을 했다. 주자 만루 상황에서 폭투, 볼넷, 폭투, 볼넷, 몸에 맞는 공을 던지더니 엘지 투수가 안타는 하나도 맞지 않고 4점이나 실점했다. “에휴, 동네 야구도 아니고 말이야. 투수가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는 게 말이 되냐? 내가 던져도 되겠다. 응? “
큰 의미 없는 화풀이이다.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말은 그렇게 해도 내가 절대로 선수들보다 잘할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선수가 말이다. 프로선수라면 쉽게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하니까 그냥 하는 빈정거림이다.
하상욱 시인은 “남이 하는 일들이 쉬워 보인다면 그 사람이 잘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선수들은 쉽게 공을 던지고 받고 친다. 잘하니까 쉬워 보인다. 그들이 야구를 잘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좌절은 어떻게 견디고 이겨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노력은 보지 않고 결과만 보니 쉬워 보인다. 쉽게 보이니 조금만 못해도 빈정거린다. 내가 해도 더 잘하겠다는 말이 선수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줄은 몰랐다. 선수들 면전에 대놓고 한 적은 없지만 앞으로는 삼가야겠다. 이런 말을 듣지 않아도, 나희도 선수의 말처럼 지금 제일 잘하고 싶은 거는 선수 본인일 테니까 말이다. 응원이나 열심히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