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 봤나? 곤충교상이라는 말. 몰랐냐고? 너는 어떻게 곤충교상을 알고 있어? 흔히 쓰는 말이 아니잖아. 정말 정말 난 이번에 처음 들었어. 피부과 의사 선생이 내 상처를 보더니, 진료기록지에 ‘곤충교상’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쓰더라고. 충수염과 부비동염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어. 맹장염과 축농증보다 뭔가 훨씬 질병 같은 느낌이지만 입에 착착 달라붙지 않아 낯설고 어색해.
아침에 잠을 깼는데 눈을 뜰 수 없었어. 눈 주위가 벌겋게 퉁퉁 부어서 말이야. 처음에는 결막염 같은 눈병인가 했어. 눈을 감고, 아니 눈을 뜨지 못했으니 그대로 눈을 감은 채로 생각해 보았어. 밤 새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나의 눈덩이는 밤탱이가 되었을까? ’두 눈이 다 그런가? 아니다. 왼쪽 눈 주위만 그렇네. 그렇다면 눈 주위만 아픈가 아니면 눈알도 아픈가? 아니다 눈은 상관없고 눈 주위도 아프지는 않고 간지럽군.‘ 자면서 간지러워 벅벅 긁은 기억이 나더라. 아~ 뭔가에 물렸구나 했어. 모기는 아닌 것 같았어. 그래도 병원은 안 가도 되겠구나 했어. 이 정도로 병원에 갈 필요가 있나? 게다가 우리 동네 병원은 대기 시간이 길어도 너무 길어서, 진료를 기다리다 없던 병도 생기기 십상이라 웬만하면 병원에 안 가.
아이고야. 이를 어쩌나. 약을 못 바르겠어. 눈에 약이 들어갈까 봐 겁이 나가지고 손이 바들바들 떨려. 상처를 소독하고 집에 있는 연고를 바르려고 했지. 눈두덩에만 발라야 하는데 눈동자에 약이 묻으면 어떡하지? 눈에 멀찍이 떨어진 데만 바르면 의미가 없는데 어떡하나? 딱히 아픈 데가 없으니 약을 바르지 않고 하루 정도 경과를 지켜볼까? 결국 약은 못 발랐어. 경과를 지켜보지도 못했어. 그런데 있잖아. 머리가 지끈거려 눈이 아프면 나는 두통이 꼭 오더라. 두통 때문인지 가렵기만 했던 눈 주위가 따끔따끔하는 것 같지 뭐야. 한 나절도 못 버티고 병원에 갔어. 어이구.
언제부터 이랬는지, 상처가 아프지는 않은지, 아프지 않으면 어떻게 불편한지, 농사를 짓는지, 바깥 활동을 많이 하는지 - 등등을 물어보더니 곤충교상이라고 하시더군. 곤충에게 물린 상처라는 거야. 찰과상, 타박상, 화상은 많이 들어봤는데 ‘교상’은 너무 낯설더라. 의사의 진단을 들으면서 ‘교상’의 ‘상’은 상처를 뜻하고 ‘교’는 한자로 무얼까. 이런 생각을 했어. 가르칠 교, 사귈 교, 학교 교, 다리 교, 교만할 교 - 모르겠더라. 알리가 없지. 알았으면 ‘교상’을 내가 몰랐을 리가 없지. 병원 진료받으면서 별 생각을 다 한다고? 하하하 상처가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지, 뭐.
주사를 맞고, 5 일치나 처방해 준 약은 하루만 먹고, 연고는 하루에 2번씩 이틀 동안 - 눈에 들어가도 괜찮은 약이라고 하길래, 맘껏 충분히 쓱쓱 발랐더니 싹 나았지. 의사는 대상포진의 가능성도 있다고 했어. 차도가 없으면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해서, 조금 걱정했는데 이렇게 쉽게 금방 나을 줄이야. 그러고 보니 시간이 지나면 나을 상처였잖아. 병원에 안 가도 될 것을 괜히 갔네, 괜히 갔어. 사람 마음이 이렇게나 간사해. 시골은 도시와 달리 벌레에 물리는 일이 다반사야. 언제 어디에서 어떤 벌레에게 물렸는지도 모르는 상처가 있어. 모기에게 물린 것은 상처로 취급을 안 해도 그래. 지금도 내 왼팔에 불그스름한 상처가 있어. 이것도 곤충교상이겠지. 신원불상의 곤충에게 물린 상처.
시골살이를 계획할 때 벌레 문제도 고려했어. 너도 알다시피 내가 벌레를 무서워하는 스타일은 아니잖아. 비록 고래고래 소리는 지르지만 말이야. 바퀴벌레를 봐도 놀래서 소리는 지르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어떻게든 잡아보겠다고 슬리퍼를 던지는 사람이잖아.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지. ‘벌레, 그까짓 거, 하나도 무섭지 않다. 벌레는 내 시골살이에 아무 영향이 없다’고 했는데 말이야. 영향이 있네, 있어. 내가 피부과 단골이 될 줄은 몰랐네 그려. 버섯 알러지, 풀 알러지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곤충교상. 참, ‘교상’의 ‘교’는 깨문다는 뜻 이래. 그러니까 교상은 ‘곤충이나 짐승에게 물려서 생긴 상처’를 의미하는 거지. 벌레에 물린 덕분에 새 한자도 배우고 좋구나 좋아. 하하하하. 하지만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란다. 훌쩍훌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