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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미하다

어리석고 둔하다

by 송알송알


투미하다? 티미하다?

읽고 있던 소설에 ‘투미하다’라는 말이 나왔다. 문맥으로 미뤄 짐작해 보면 내가 알고 있는 말 ‘티미하다’와 같은 뜻이다. 티미하다는 말을 어릴 때 가끔 들었다. “니는 와 이래 티미하노? 그거 하나 제대로 몬하고 그라노?” 어른이 되고는 들을 일이 없었고 (누가 감히 어른에게 티미하다고 하겠는가?) 나도 남에게 티미하니 어쩌니 할 형편이 되지 않는지라, 오랫동안 쓰지 않은 말인 줄 알았는데 사투리였다. 타향살이하느라 잊고 지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하다’가 사투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놀랍고 재미있어 메모했다. 기회가 오면 써먹을 테다.


투미하다는 말을 써먹을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서글프도다.


친구들과 일요일 저녁에 온라인에서 만나 책 읽기를 한다. 어제는 두 번째 날이었는데, 나라는 인간은 완전히 다 까먹고 거실에서 리모컨 놀이를 했더랬다. ”주말 저녁에 테레비에 볼 게 하나도 없네? “ 이러면서도 TV를 끌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리모컨만 위로 아래로 계속 움직였다. “홈쇼핑 채널이 가장 재미있군. ㅋㅋㅋㅋ“ ” TV 프로그램을 하나 보는 것보다 리모컨을 움직이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얼마나 더 많이 필요할까? “ 이런 소리나 하면서 말이다.


리모컨 놀이도 어느 정도 하면 지겹다. 어쩔 수 없이 TV에게 안녕 인사를 하고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 위에 내동댕이쳐진 핸드폰의 모습이 영 찝찝하다. ”얘는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지? 왜 침대 위에 있는 거야? “


엄마야~~~ 핸드폰에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후였다. 독서 모임 시간에 내가 출석하지 않아 친구들이 돌아가며 전화하고 톡을 했더라. 아~놔~ 나 왜 이러는 거야? 어떻게 약속을 잊을 수가 있지. 나는 말이야. 약속을 어기거나 늦는 것을 너무너무 싫어하는 사람인데 말이야, 말이야. 어떻게 내가 이럴 수가? 사실은 첫째 날에도 까먹어서, 시작 전에 간신히 알아차리고 참석했다. 오늘의 모임은 참석도 못하고 끝났다. 나는 일요일 모임시간을 자꾸만 월요일이라고 여긴다.( 혹시 나는 월요일에 하고 싶은 건가?)


”이런 쯧쯧, 나는 … 어째… 투미한 인간 같으니라고 “


자꾸만 티미해진다, 아니 투미해지고 있다. 원래는 안 그랬지 싶은데, 지금은 기억력은 감퇴, 이해력은 감소, 분석력 같은 힘은 아예 없어진 기분이다. 조용필 오빠의 말에 의하면 하루라도 노래 연습을 안 하면 목소리도 늙는다던데, 나는 머리를 너무 안 쓰나. 리모컨 놀이나 하고 앉아서 말이다.


알람 설정을 하고 메모도 주방에 붙여둘까 하다가 ( 자주 보고 기억을 되새기려면 자주 보아야 하고, 내 경우 자주 보려면 주방에 메모를 붙여두는 것이 좋다.) 일기를 썼다. 통곡의 마음으로 썼다.


이렇게 하고도 다음 주 모임을 잊으면 나는, 너무너무 투미한 거다. (훌쩍훌쩍)


내가 바보개라고 놀리는 우리집 강아지들 - 복실이와 차순이. 요즘 내가 얘들보다 더 바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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