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밥을 한다
“오늘 저녁에 뭐 해 먹지? “
시시때때로 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며칠 전에는 내 말에 한숨이 유난히 많이 묻어났나 보다. 남편이 한 달 치 식단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참고해서 한 달 주기로 돌리면 된다나. 식단표를 대충 훑어보니 평소 우리의 상차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우리 가족이 좋아하고 즐겨 먹는 식재료를 주고 AI에게 부탁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에휴”
“이제 밥 할 때마다 메뉴 고민 안 해도 되니까 좋지? 그렇지?”
“곰곰 생각해 보니 ’오늘 뭐 해 먹지 ‘는 메뉴 고민이 아니라 밥 하기 싫다는 의미였어.”
“그러면 솔직하게 구체적으로 밥을 하기 싫다고 말을 해야지? 왜 다른 말을 해?”
“그러게나 말이야.”
밥 하기 싫다. 격하게 싫다. 여름이라 그런가? 더위 탓이라고 핑계를 대려다 문득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신문 기사를 읽고 남편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어느 할아버지가 배우자를 잃은 슬픔과 상실감, 그리움을 견디지 못해 할머니와 사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세 돌아가셨다는 기사였다. 내용은 정확하게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할머니를 따라 돌아가신 것이고, 두 분의 사랑에 감동하고 칭송하는 글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친정아버지 또래였다. 그 기사에 감명받은 남편이 우리 부부도 이 분들처럼 오래오래 사랑하며 오손도손 함께 잘 살자고 했다.
나는 그 할아버지의 사랑이 읽히지 않았다. 평생 돌봄을 받는데 익숙했던 그 할아버지는 돌봐주는 사람이 곁에 없어 식사를 제때제때 하지 못하고 일상이 불편해지고, 그러다가 건강이 나빠져 돌아가신 게 아닐까 - 이런 못된 마음이 들었다. 얼마나 내 마음이 삐뚤어졌으면 그랬을까. 그 무렵 나는 독박육아와 살림에 지쳐 아주 많이 삐뚤어져 있었다. 남편은 바깥일, 나는 집안일을 전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는데도 그랬다.
오래오래 함께 사랑하며 함께 하자는 남편에게 ‘나이 들어 당신이 밥을 하면 생각해 보겠다’고 대답했었다. 늙을 때까지 함께 사는 것이 싫은 건지, 밥 하는 것이 왜 그렇게 싫은 건지 , 나이 들었다는 것은 몇 살을 의미하는 건지 - 의미 없는 말들을 주고받고 결론도 없이 이야기가 끝났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남편이 밥을 해도 되는 충분한 ‘나이’가 되었다. 심지어 그는 나보다 요리 솜씨가 월등하다. 그런데 남편이 밥을 하면 나는 뭘 하지. 시골로 이사 온 후, 식사 준비를 제외한 집안일 대부분을 함께 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남편이 훨씬 많이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는 나보다 키도 크고 힘이 세고 일머리도 있고 재빠르기 때문이다.
밥 하기 싫다. 밥 하기 싫으니 밥맛도 없고 배도 안 고프면 좋겠는데 말이다. 끼니때만 되면 뱃속에 거지라도 들어앉아 있는지 배는 왜 이리 고플까? 누가 대신 밥 해주면 좋겠다. 남편에게 맡기고 싶은데,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한 사람에게만 일을 몰아주는 것은 아니 될 일이다. 지금껏 밥을 해온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슬프게도 그렇다. 밥은 하기 싫지만 배는 고파서 오늘도 밥을 했다. 남편과 아이가 맛있게 먹었다. 기분이 좋았다. 내일은 뭐 해 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