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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꽃무늬 양말

by 송알송알

“이 양말 예쁘지? 네가 가져가 신어라.”

“예쁜 양말은 엄마가 신어요.”

“이 나이에… 꽃무늬 양말은 좀 부끄럽다.”

”예쁘다면서요? 예쁘면 신으면 되지, 나이가 뭔 상관이래요? “


엄마가 양말 세트를 선물로 받았다. 엄마의 조카님이 생일 기념으로 밥을 사고 선물을 주었단다. 엄마의 조카님은 내 외사촌 오빠이고 나이는 팔십이 넘었다. 어르신들은 당신의 생일날 밥도 사고 선물을 받지 않고 주는 건가?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고 팔십 넘은 오빠가 구십 노인 엄마를 위해 준비한 양말이라는 거다. 양말 말고도 우리 엄마는 틈만 나면 당신 것을 나에게 주고 싶어 한다. 주로 선물로 받은 고가의 옷, 스카프. 모자, 가방 등등이다. 내가 입고 걸치고 쓰면 예쁘겠단다.


나는 삼 남매 중의 둘째, 위로 언니가 있다. 어린 시절 새 옷을 입은 기억이 거의 없다. 대학생 때부터 물려받지 않아도 되었지만 언니 옷과 내 옷을 구분하지 않고 입었다. 내 옷은 거의 없었으므로 구분이 필요 없었다고 생각한다. 언니 말에 의하면 다음날 입으려고 깨끗하게 빨아 정성껏 다려놓은 옷을, 내가 홀라당 입고 외출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나는 절대 모르는 일이다. 그저 그날 제일 좋아 보이는 옷을 입고 나갔을 뿐이다. 대학교 졸업 앨범 사진 속 투피스도 언니 옷, 대학원 졸업식 때 입은 원피스도 언니가 입던 옷이다. 덕분에 옷 욕심이 없고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찾는 능력을 키우지 못했고, 옷을 구매하는 일을 어려워하는, 새 옷보다 헌 옷이 편한 사람이 되었다.


취업을 하고 고향을 떠나면서 언니의 옷장에서 독립을 했다. 나의 패션 센스는 나아졌을까? 글쎄다. 팀장님을 제외한 모든 팀원들이 스티브 잡스처럼 입고 다니는 회사였다. 회사를 다니는 내내 좋아하는 후드티와 청바지를 입었다. 후드티는 색깔별로 장만해 놓고 입은 적도 있다. 나는 편하고 좋은데 엄마는 안타까워하셨다. “티 쪼가리는 그만 입고 예쁜 옷 좀 사 입어라. 나이 들면 예쁜 옷을 입고 싶어도 못 입는단다.” 돈이 쪼들려 옷을 못 사는 형편으로 생각하셨는지 옷을 사라며 용돈을 주시려고 한 적도 있다.


”언니야, 엄마가 자꾸만 당신 옷을 나보고 입으래. 언니한테도 그래? “

“아니.”

”그래? 그럼 왜 나한테만 그러시지? “

“엄마가 주면 너는 잘 받아가니까 그러시는 것 아닐까?”


맞다. 나는 엄마가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온다. 구시렁거리기는 한다. 엄마는 왜 자꾸 나에게 옷, 스카프, 모자, 가방 등등을 주려고 하시는 걸까? 내일모레 60인 딸내미가 아직도 티 쪼가리를 입고 다니는 모양새가 안쓰럽나? 아니면 어릴 때 잘 입히지 못한 미안함을 풀고 싶으신 건가? 흠… 아닌 것 같다. 만약에 그렇다면 백화점에 데리고 가서 사주면 될 일이다.


지난겨울에도 엄마가 주신 카디건과 패딩을 (부지런히 ) 입고 다녔다. 누가 보아도, 앞으로 보고 뒤구르기를 하며 봐도 구십 노인에게 어울릴 법한 것들이지만 어떠랴. 내가 갖고 있던 패딩보다 가벼워서 좋았다. 특히 엄마를 보러 갈 때는 꼭 입는다. 나는 새 옷보다 남의 옷이 더 편한 사람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엄마가 즐거워하시니 좋다. 꽃무늬 양말도 들고 와서 서랍장에 넣어 두었다. 언젠가는 신겠지 뭐. 긴 바지 입으면 보이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부담스럽다. 그리고 궁금한 게 하나 있다. 당신의 옷이 딸내미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우리 엄마의 마음은 진심일까?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고 해도 말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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