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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콘서트, 드디어 직관하다

즐거운 노인 되기 프로젝트 시작?

by 송알송알


어른이 되어 가는 사이 현실과 마주쳤을 때
도망치치 않으려 피해 가지 않으려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
오 그런 나이여 왔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부끄럽지 않도록 불행하지 않도록 더 늦지 않도록

가수 이승환의 노래 <물어본다>중에서


가수 박효신의 노래 <Gift>를 들르면 남편 생각이 난다. ‘오늘의 하늘은 누군가가 내게 준 선물 같아 ‘라는 부분을 들으면 특히 그렇다. 남편은 하늘이 내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Gift>를 남편의 주제곡으로 명명했다. 내 맘대로 남편의 주제곡을 만들고 나니, 내 주제곡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정체성, 성품, 감정, 신념 등등을 잘 표현하는 노래가 딱 있다. 이승환 가수의 <물어본다>를 처음 들었을 때, 마치 내 마음을 옮겨 놓은 것 같은 노랫말이 참 좋았다. 내 말과 행동이 부끄럽지 않은지, 현실과 이상을 들먹이며 내 마음을 속이지 않거나 도망가지 않는지, 좋은 어른으로 늙어가고 있는지 물어보면서 살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물어본다>는 내 주제곡이 되었다.


이승환 오빠의 콘서트에 가본 적이 없었다. 지금부터 오빠라고 부르겠다. 잘생기면 나이 불문하고 오빠라는 농담이 있지만 그는 합법적, 물리적, 도덕적 기준을 갖다 대어도 오라버니가 확실하다. ( 오 좋아라) 명색이 내 주제곡을 라이브로 들어 본 적이 없다니, 말이 안 된다. 이렇게 된 데는 이승환 오빠의 탓도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그는 알다시피 공연의 신이다. 일 년에 서너 번 공연을 하는 여타 가수와 달리 그의 공연 일정은 일주일 간격으로 빼곡하다. 그니까 말이다. 언제든 그는 공연을 하고 있으니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을 것 같아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다. 그리 된 것이다.

1박2일을 위한 봇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녀오다. 무거워!!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오빠는 이제 곧 환갑이고 나도 그렇다. 승환 옹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지 꽤 되었지. 아마도. 죽기 전에…… 아니 아니 더 늙기 전에 내 주제곡을 라이브로 한 번은 듣고 싶었다. 지난 8월 30일 서울 올림픽 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그의 공연에 다녀왔다.


좋았다. 노태우 대통령 정권 때 데뷔한 그가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 좋다. 짜랑짜랑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서울 앵콜콘에 더해진 나팔들(브라스라고 불리는 금관악기들) 덕분에 소리는 황홀하게 좋았다. 오빠 말대로 20세기 노래는 많이 알고 21세기에 발표한 노래는 잘 몰라도 즐거워서 좋았다. 종이비행기와 휴지를 날리는 이벤트는 눈물 나게 아름다워서 좋았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비행기와 휴지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순식간에 자발적으로 깨끗하게 치워져 좋았다. 노래 <물어본다>는 당연히 감동이었고 이번에 새로 알게 된 노래 <백야>와 <내게>도 좋았다. 관객의 평균 연령이 내 나이 또래라서 더 좋았다. 공연 오프닝 때 남들 벌떡 일어나자, 뒷자리 사람이 무대가 보이지 않는다고 나에게 앉으라고 했다. 모두 일어났지만 일어나지 못하는 그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내가 좋았다. 나이 들어가는 팬들을 고려하여 발라드를 많이 불러서 좋았다. 발라드만 부르면 조금은 심심할 뻔했는데 그의 말대로 신나게 ‘처달리는’ 노래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좋았다. 다 좋았다. 이럴 때 우리들이 하는 말이 있다. ”아름다운 밤이에요 “ 이 말에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나이 들었다는 거다. 하하하.


나는 음악을 잘 모르지만 콘서트 직관이 즐겁다. 이 즐거움을 자주 누리고 싶은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가 젊었을 때는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었고, 아이들 키울 때는 시간도 돈도 없었다. 지금은 시간은 무진장 많고 작은 기쁨을 즐길 만큼의 돈은 있는데 이번에는 사는 곳이 걸림돌이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막차를 탈 수 없다. 맙소사. 이것은 시골사람의 애환(?)이다.


생각해 보면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핑계는 차고 넘치게 있었다. 또 그만큼의 아쉬움과 후회도 있다. 공연 내내 승환 오라버니가 죽음과 끝을 암시하는 말을 해서 불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예정된 공연을 다 끝내면 긴 휴식을 갖는단다. 그때가 언제일지도 모르는데, 이번에 미루지 않아서 잘했다. 이제 핑계는 고만 대고 열심히 하고 가능한 한 재미있게 즐겨야겠다. 뛰라는 가수의 말에 뛰지는 못하고 무릎만 까딱까딱거리며 뛰는 척하면 좀 어때? 안 그래? 내가 즐길 수 있는 만큼 즐기면 된다. 이렇게 쓰고 보니 가보고 싶은 공연 목록이 줄을 선다. 1년에 한 번, 6개월에 한 번, 무엇이 좋을까?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이것을 즐거운 노인으로 살기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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