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라는 드라마 촬영하나 보다.”
“어비스는 무슨 뜻이지? 누가 나오는 거지? 언제 방송하나?”
문경새재 산책길에 잠시 쉬던 중이었다. 우리가 앉은 평상 아래에 촬영 차량을 알리는 안내문이 떨어져 있었다. 문경새재에는 광화문 거리와 조선시대 마을로 구성된 촬영 세트장이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 광화문이 나오면 열에 아홉은 문경새재 세트장에서 촬영했다고 보면 된다. 가끔은 숲에서도 촬영을 하는 덕분에 산책길에 구경한 적도 있다. 배우 외에도 촬영용 차량, 장비와 스태프들이 어찌나 많은지 볼 때마다 놀란다.
“2019년에 방영한 드라마래.”
“오~ 그러네. 안효섭이라는 배우가 출연했네. “
어떻게 된 일일까. 6년 전 안내문이 갑자기 어떻게 나타났을까? 옛날에 떨어졌는데 바람에 날리고 흙과 낙엽에 묻혀 있다가 나타났나? 아니면 촬영용 차량에 정리되지 않는 짐에 섞여있다가 이번에 톡 하고 떨어졌나? 아니면 요즘 <케이팝데먼헌터스>에 목소리 출연한 걸로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안효섭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의 역주행을 노린 것일까? SNS나 휴대폰 카메라 앨범이 보여주는 ‘N 년 전 오늘’ 같은 것인가? 별별 생각을 했지만 아무래도 옛날에 떨어진 것이 지금에 발견된 것이 맞겠다 싶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딱히 기분 나쁠 일은 아닌데 말이다. 촬영 후 뒷정리를 깔끔하게 하지 않고 떠난 사람들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 이런 쓰레기들은 왜 썩지도 않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나의 흔적을 우연히 발견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말이 있는데 말이지.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려면 내가 쓴 물건과 공간을 잘 정리해야지 했다. 물건과 공간 외에 또 무엇을 정리해야 할까?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핸드폰과 노트북 앨범 정리가 떠올랐다. 왜지? 이유가 뭘까? 이런 참. 맥락 없는 사고의 흐름을, 나도 내가 이러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사용하는 물건들 중에 가장 정리가 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앨범은 그야말로 뒤죽박죽 엉망진창이다. 나는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남들 10장 찍을 때 1~2장 정도 찍는 것 같은데도 앨범에 어느새 수천 장의 사진이 꽉꽉 차 있다. 내가 언제 어디에서 왜 이 많은 사진을 찍었을까?
비슷비슷한 사진들이 쌓여간다.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는 현상하고 인화해서 바로바로 앨범에 정리했었다. 디지털카메라와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찍으면 끝이다. 쉽게 찍고 금방 잊는다. 지나치게 친절한 휴대폰 카메라 앱이 과거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보여주지 않으면 내가 스스로 찾아볼 일도 거의 없다. 솔직히 사진이 너무 많아서 찾기도 힘들다. 어쩌면 중복된 사진도 많을 거다.
사진을 정리해야겠다. 지워도 되는 사진은 지우고 항목별로, 날짜별로 , 주제별로 정리를 하면 좋겠다. 언제 하지? 어떻게 하지? 엄두가 안 난다. 하긴 해야 하는데… 사진 정리 하고 싶다. 너무너무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