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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무를 소개합니다

우리 동네는 아주 멋진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by 송알송알
가을


‘내 나무의 가을 사진을 찍는 날. 어떤 색깔 단풍이 들었나요? 네 장을 사진을 나란히 놓고 바라보면 내 나무에 다녀간 계절이 선명히 보일 거예요.’


10월 22일 자 일력의 글이다. 내 나무의 가을 사진을 찍는 날이란다. 나는 일력의 글대로 해보려고 노력한다. 재미있다, 오늘은… 흠… 나는 내 나무 없는데 어떡하나? 오늘 만나는 나무 중 가장 멋진 나무 사진을 하나 찍고 내 나무로 명명해야지 했다. 나무를 봐도 이름표를 달고 있지 않으면 무슨 나무인지 구분도 못하면서 내 나무가 될 어떤 나무는 운이 좋은 거라고 이랬다. 동네 큰길에 많은 벚나무로 할까? 너무 흔하다. 문경새재에서 많이 보이는 물박달나무로 할까? 박달이라는 말은 몽둥이를 연상시켜 별로다. 어떤 나무가 좋을까? 일단 나무를 보려면 산책을 가야 하나 어쩌나 이러다가 떠올랐다. 우리 동네에 아주 멋진 느티나무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이사 오고 처음 한 동안은 그 나무 옆을 지나갈 때마다 사진을 찍었었다. 놀러 온 친구들이 우리 집에 숙박을 하면, 다음날 아침에 무조건 느티나무로 데려갔다. 패키지 관광의 필수코스처럼 말이다. 겸사겸사 동네 산책도 하고 나무 자랑도 늘어놓았다. 멋진 나무네, 영험해 보이네, 새순이 귀엽네, 낙엽이 분위기 있게 떨어지네, 나뭇잎이 다 떨어져도 멋있네 어쩌네 - 온갖 호들갑을 떨며 사진을 찍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올해는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는 것도 떠올랐다. 익숙해졌고 늘 곁에 있으니 심상해진 것이다.


마을 초입에 있는 이 나무는 500살이 넘었다고 한다. 동네를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금줄을 치고 제를 올린다. 처음에 궁금해서 한 번 가보려고 했더니만 여자라고 오지 말라고 하더라. 안 그래도 추운 겨울날 자정에 지낸다고 해서 궁금하면서도 망설여졌는데, 잘 되었다 했다. 그런데 여전히 궁금하고 조금은 섭섭하다.


그렇거나 말거나 나는 이 나무가 좋다. 한 그루가 아니라 여러 그루가 모여 있어 더 좋다. 작은 공원 같다. 정자와 벤치가 있어 여름에 더위 피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논밭에서 일하다가 잠시 쉬기에도 좋다. 가끔 정자에서 고스톱 판이 벌어지는데 보기 좋지 않다. 나무의 기운에 때가 묻는 것 같달까.


한 번은 우리 동네를 떠난 지 40년이 넘었다는 어떤 아저씨를 나무 아래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은 이 나무 근처에서 친구들과 놀았던 기억이 나서 들렸다고 했다. 가족 모두가 고향을 떠나서 와보고 싶어도 잘 안되더란다. 은퇴를 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왔다는 그 아저씨는 부인과 함께 전국일주 여행 중이었다. 40년 전에 고향을 떠난 분과 그분의 고향에 이제 막 이사 온 우리 부부가 느티나무 아래에서 (아저씨의 여행용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재미있는 기억이다.


김중미 작가의 <느티나무 수호대>를 읽으면서 우리 동네 느티나무를 생각했다. 작품 속 마을에도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오랜 세월 마을 사람들 곁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해 온 이 나무의 정령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도록 이끈다는 이야기다. 김중미 작가는 어떤 느티나무를 보고 작품의 영감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혹시 우리 동네에 다녀가셨나? 나도 우리 동네 느티나무에게서 영감을 받으면 소설을 막막 쓰게 되는 건가- 이런 상상을 하기도 했다.


감히 내 나무라고 해도 될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나무가 내 옆에 있었는데 고새 다 잊어 먹고 내 나무가 있니 없니 했다. 사진첩에서 사진을 찾아보았다. 중구난방 엉망진창이고 정리가 시급하게 필요해 보이는 사진첩이라 찾기 쉽지 않았지만 몇 장 발견했다. 사진으로 봐도 멋지다. 그런데 여름, 가을, 겨울 사진은 있는데 봄이 없다. 내가 분명 새순이 올라오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것 같은데, 어디에 두었더라. 연두 빛 순이 올라오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감탄하느라 사진을 안 찍었나? 그랬나 보다. 이제 내 나무로 정식 지정했으니 더 잘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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