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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Apr 04. 2022

니나는 슈타인에게 왜 그랬을까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를 읽고


니나와 슈타인은 무슨 관계일까. 느슨한 듯 아닌 듯 끈끈한 듯 아닌 듯하다.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를 읽었다. 20대에 니나를 만난 봄봄 친구들은 니나를 동경했다고 말한다. 죽음을 갈망하는 니나에 공감했고, 니나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못된 세상에 순응하지 않는 니나처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평안함에 머물지 않는 니나의 열정을 갖고 싶었다. 옳고 그름을 알고 행동할 줄 아는 똑똑한 니나가 부러웠다. 나도 20대에 니나를 만났다면 그가 삶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방식을 닮고 싶어 했을 것 같다.


나이 오십을 넘겨 지금 다시 만난 니나는 위태롭게 보인다. 헬레네의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도 니나가 불안하게 만드는 게 있다고 말한다. 나는 슈타인이 더 눈에 들어온다. 슈타인은 왜 필요할 때만 찾아오는 니나를 내치지도 못하고 더 가까워지지도 못한다. 슈타인도 짜증을 낸 적 있다. 니나가 자신을 개처럼 취급한다고, 주인이 휘파람을 불면 쪼르르 달려가는 개로 알고 있다며 분노의 일기를 쓴 적이 있다. 그는 왜 니나를 떠나지 못하는가.


자신의 병원에 패혈증 환자로 온 니나를 보자마자 슈타인은 사랑에 빠진다. 그 후  니나가 아버지의 빚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시골에서 친척 할머니를 돌보며 가게 판매원으로 일하는 동안에도, 폐결핵에 걸린 신학도와 사랑 아닌 연민의 사랑을 할 때도 , 위험을 무릅쓰고 니나의 반나치즘 활동을 도우면서, 날라리처럼 보이는 퍼시 할과의 결혼과  알렉산더와의 사랑을 지켜보면서, 자살 시도한 니나를 돕고 보살피며 18년 동안 사랑의 마음을 품고 주변을 맴돈다.


니나에게 슈타인은 어떤 존재인가? 니나는 필요하면 그를  찾고 , 원하지 않으면 부르지 않는다. 게다가 슈타인이 자신이 말하는 것을 절대로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뿐인가. 슈타인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안다. 자신에게 연인의 감정을 가진 사람에게 이래도 되나. 니나가 슈타인에게 하는 행동이 마음이 들지 않는다. 두 사람의 관계를 이성 간의 사랑이라는 말로 정의하면 그렇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 이상의 무엇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슈타인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옳아. 그는 늘 나와는 다른 어떤 것을 나에게서 만들려고 했으며 , 그리고 이런 그에게 계속 반항하는 가운데 내가 정말 누구인지 알게 되었으니까. “

니나는 언니에게 슈타인 덕분에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내가 어둡고 출구가 없어 보이는 낭하를 끝없이 가고 있을 때마다 나에게 문을 열어준 것은 당신이었다고. 당신은 왔으며 당신과 함께 양지바르고 확 트인 대지가 펼쳐져 있었고. 나는 비록 이 대지에 발을 들여놓지는 못했지만  그 대지를 본 것으로 나의 지난 암담함은 구제될 수 있었소.”

슈타인은 니나에게 말한다. 니나가 문을 열어주었지만 자신은 그쪽으로 갈 힘이 없었다고, 서로 만나기는 했지만 서로의 인생이 너무나 달라 상대방의 문지방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말이다.


자신의 가치관과 다른 니나의 삶을 이해하고 인정한 슈타인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슈타인은 니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하지만 사랑이 없어도 할 수 있다. 젊었을 때는 나와 다른 철학을 가진 사람들,  내 눈에는 하잖아 보이는 가치를 쫓는, 나와 신념이 다른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여전히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지금은 조금은 이해된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고 내 생각이 무조건 옳지 않다는 것도 인정하게 되었다. 나이 들어보니 그렇다. 그런데도 니나와 슈타인의 관계는 여전히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은 잘 알겠다. 하지만 니나는 슈타인에게  왜 그랬을까. 니나의 머리끄덩이라도 잡고 싶지만 내가 뭘 어쩌겠나. 그것이 슈타인의 사랑이고 모든 관계에 딱 떨어지는 정답이 있을 리 없으니 말이다. 알면서도 정답을 찾는 나는 나이만 먹었을 뿐 한참 어리석다. 루이제 린저 덕분에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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