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엔 버건디가 너무 많아

응원팀 바꾸기, 쉽지 않다

by 송알송알


나는 이번 시즌에 엘지 트윈스를 응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응원팀을 선언까지 할 일인가 싶지만 그랬다. 작년 여름 , 그러니까 2021년 7월 27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서건창 선수가 엘지 트윈스로 이적하였을 때도 나의 최애팀은 키움 히어로즈였다. 두 팀이 경기를 하면 서건창 선수는 매 타석마다 안타를 치고 승리는 히어로즈가 하길 바랬다. 최애 선수의 소속팀이 내가 응원하는 팀과 달라서인지 점점 경기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싶어 선언했다. “이제부터 나는 엘지 트윈스 팬이야!”


서건창 선수의 등번호를 마킹한 엘지 트윈스 유니폼을 구입했다. 자칭 키움 히어로즈 응원단 과천지부라고 자부하는 가족들이 팀보다 위대한 선수 없고, 선수 따라 팀 옮기면 안 된다고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랬던 가족들도 박병호 선수의 FA 계약은 충격이 컸는지 응원팀 변경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키움 히어로즈는 베테랑을 너무 홀대한다, 베테랑이 없어 우승을 못한다, 팬들은 우승을 원하는데 구단은 말은 하는데 속내는 아닌 것 같다, 키움 히어로즈의 홈구장 고척돔보다 KT 위즈의 홈구장 위즈파크가 집에서 더 가까워 직괸하기 좋다,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말이다. KT 위즈는 박병호 선수의 새 팀이다. 그렇게 2022년 시즌이 시작되었다.


야구팬들이 응원하는 팀을 바꾸는 것을 팀세탁이라고 부른다. 팀세탁은 장마철에 빨래 말리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렵다. 빨래는 비가 오면 건조기를 이용하던가 빨래방에 가서 말리던가 상황에 맞게 할 수 있지만 팀 응원은 그렇지 않다. 우리 팀이 허구한 날 지기만 한다고 응원을 그만둘 수 없고, 이길 때만 즐겁게 응원할 수도 없다.


한화 이글스는 순위표에서 늘 비밀번호를 찍는 만년 하위팀이다, 그럼에도 이글스 팬들은 한결같이 이글스를 응원하고 우리는 그들을 보살이라 부른다. 엘지 트윈스는 28년 전 우승 이후 우승 소식이 없고 우승 문턱이라 할 수 있는 한국시리즈도 해본 기억이 오래되었다. 그래서인지 친구가 엘지 트윈스의 오래된 팬이라면 믿어도 된다는 말이 있다. 보살이나 신의 있는 친구라는 말에는 그만큼 팀 세탁이 어렵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각설하고 나와 우리 가족은 여전히 키움 히어로즈를 응원한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응원팀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히어로즈와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다. 우리 팀은 우승은 한 번도 못했지만 가을야구 단골팀이다. 모기업의 재정지원을 받는 다른 구단과 달리 모기업 없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 같아서 응원하고 싶다. 한편으로는 넉넉하지 않은 재정 때문에 정든 선수들과 해마다 이별해야 해서 서글프다. 선수들의 이름값이나 연공서열 상관없이 평가하고 기회를 주는 모습은 좋지만 베테랑을 대하는 모습에서 낭만은 고사하고 무례함이 보여 정 떨어진다. 음주 운전한 선수를 득달같이 방출해놓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타 팀에서 음주운전으로 방출한 선수를 영입하는 팀을 내가 계속 좋아해야 하나 싶다가도 그라운드에서 흙투성이 유니폼을 입고 땀 뻘뻘 흘리며 뛰는 우리 영웅들을 보면 물개 박수가 저절로 나온다.

신인이지만 씩씩하게 던지는 이명종 선수의 투구에 엄마 미소를 짓는다. 지난 4월 5일 1점 차로 앞서고 있는 경기에 불펜투수로 나와 역전패한 신인 투수 노운현 선수의 마음에 생채기가 생기지 않았는지 걱정된다. 우리 팀의 기둥 이정후 선수가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것도 보고 싶다. 아~ 일단 이번 시즌에 우승했으면 좋겠다.


에휴~ 글렀다. 히어로즈 팬을 그만두는 것은 너무 어렵다.


덧붙임) 그래도 서건창 선수는 아주 잘했으면 좋겠다. 혹시 키움과 엘지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는다면? 행복한 고민은 그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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