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희 작가의 <날마다 만우절>을 읽고
윤성희 작가는 야구를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다. 윤 작가의 단편집 <날마다 만우절>을 읽고 있다. 책 여기저기에서 무심히 툭 튀어나오는 야구 이야기가 반갑다. 야구가 예전만큼 재미없다고 투덜거리고 , 툭하면 야구와 이별하네 마네 하면서도 야구의 ‘야’ 자만 언급되어도 귀가 커다랗게 팔랑거리고 눈동자는 초롱초롱해진다. 흡사 파블로프의 개가 된 것 같다. 야구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읽어도 반갑기 그지없는데 사전 정보 없이 만나면 반가움이 홈런처럼 하늘을 날아간다.
어머나. 세상에나. 멋진 작품이다. 눈에 콩깍지가 잔뜩 씌어 보통만 되어도 엄지 척을 할 판인데 좋다. 야구는 이 작품의 주제도 소재도 아니다. 이를테면 남녀 주인공이 찻집에서 차를 마시는 장면이라고 치면,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꽃병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남녀 주인공보다 꽃병에 꽂혀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이다. <날마다 만우절>이 좋은 작품이어서 더 기분이 좋다. 알고 보니 2021년 소설가가 뽑은 최고의 소설 1위를 한 책이다. 우리 팀이 연타석 홈런을 치고 역전한 것 같다.
“어느 밤”에 빚보증, 사업실패와 해고를 겪으며 고약해진 남편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면 신경 써서 저녁 밥상을 차리는 할머니가 나온다. 할머니는 남편이 프로야구를 보다 ‘바보들’이라고 욕하는 것이 보기 싫다. 남편은 딱히 응원하는 팀도 없다면서 욕을 한다. 저녁으로 먹은 삼겹살이 체할 것 같다. 야구를 전혀 모르는 친구가 저녁마다 야구를 보며 욕을 하는 남편이 싫어 야구가 좋아지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뭐라고 말했더라?. “그게 뭐가 욕이야? 야구보다 보면 욕도 할 수 있지, 뭘 그런 걸 갖고 뭐라 그래?” 그랬던가. “어느 밤”의 할아버지는 야구는 핑계일 뿐 자기 자신이 답답해서 한 욕일 텐데… 야구 보는 할머니를 꿈꾼다. 어떤 모습일까? “어느 밤”의 할아버지 모습이 겹친다. 잔루 만루처럼 찜찜하다. 오. 안돼!
“네모난 기억”에서 정민은 설거지를 하다 손을 다친다. 택시기사는 정민에게 가정적인 남편이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선수도 설거지를 하다 손을 다쳐 손가락을 꿰맸고 하필이면 순위 싸움이 한참인데 다쳤다며 속상해한다. 히어로즈 김하성 선수도 화분 정리하다 다친 적 있다. 목욕하다, 아이들과 놀다가, 빗길에 미끄러져서 다친 선수도 있다. 야구하다 다친 것도 안타까운데 야구 외의 일로 다치면 속상하다. 그렇다고 야구선수도 보통사람인데 야구 외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말이다. 암튼 지간 선수들은 자나 깨나 부상 조심이다.
정민은 야구장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한다. 파울볼을 피하려다 옆자리 사람에게 맥주를 쏟는 바람에 인연이 시작된다. 야구장에서 떡볶이와 맥주를 함께 마시다 보면 정드는 건 인지상정이다. 정민은 전국의 야구장을 다 가보는 것이 목표다. 이것은 모든 야구팬의 로망이다. 나도 전국 야구장 순례가 꿈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꼭 할 테다. 윤성희 작가는 전국 야구장에 다 가보았을까? 가봤을 것 같다. 이것은 타자들의 대기록 - 사이클링 히트와 같다. 암만.
“남은 기억”에는 프로야구팀의 유니폼을 세탁하는 할머니가 나온다. 할머니는 손자를 홀로 키운다. 아들 내외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손자는 몸과 마음이 아프다. 할머니의 딸이 용돈을 줄 테니 세탁일을 하지 못하게 하지만 할머니는 그만 둘 생각이 없다. 운동복에 밴 땀 냄새가 그에게는 위로이다. 손자가 운동선수처럼 튼튼한 남자가 되는 모습을 상상하는 걸 좋아한다. 뭉클하다. 나에게도 야구는 위로이고 사랑이다. 시골에서 도시로 전학 온 후 친구 없이 집에 틀어박혀 지냈던 때, TV를 통해 야구를 만났고 푸른 잔디와 흙 묻은 유니폼이 좋았다. 야구 덕분에 친구도 생겼다.
<날마다 만우절>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소설판 같다.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이야기이다. 오늘도 길에서 마주쳤을 것 같은 그들의 이야기가 짠하고 애틋하고 남의 일 같지 않다.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윤성희 작가는 야구를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다. 야구를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서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