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뱅 님아, 히어로즈에는 그러지 마요

KT 위즈 박병호 선수를 응원합니다

by 송알송알


“때렸어요. 센터 쪽으로 뻗어갑니다. 넘어갑니다.”

“경기가 이렇게 만들어지네요.”

“기적을 믿으십니까? 기적보다 더 기적 같은 이야기. 마법의 순간이 만들어졌습니다.”


캐스터와 해설 위원의 흥분한 소리가 TV 밖까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게 왜 기적이야? 내가 보고 있는 이 장면이 진심 레알 사실이라고? 7월 27일 키움 히어로즈는 KT 위즈에게 9회말 끝내기 홈런을 맞았다. 4대 5 역전패다. 한 시즌 144경기를 하다 보면 역전패는 부지기수, 가끔은 끝내기패도 당한다. 안타깝고 분하지만 어쩌랴, 대개는 다음 경기에 잘하면 된다며 울분을 삭인다. 하지만 이번은 충격이 컸다. 홈런을 친 타자가 박병호 선수라서 그랬다. 박병호 선수는 지난 시즌까지 히어로즈의 4번 타자였다. 박뱅님아 히어로즈에는 그러지 마요.


야구팬들에게 응원하던 선수와의 이별은 왕왕 일어나는 일이다. 트레이드나 FA를 통해 우리 팀 선수가 다른 팀으로 옮긴다는 기사를 읽으면 처음에는 믿고 싶지 않다.. 거짓말이었으면 한다. 이런 오보는 귀엽다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금세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팀에서 잘하기를 바란다. 타자는 홈런을 뻥뻥 날리고 투수라면 삼진을 밥 먹듯이 잡아내며 새 팀의 기둥이 되길 기도한다. 단 조건이 있다. 친정팀과 할 때는 제외다. 백 번 천 번 양보해서 친정팀과 경기할 때 잘해도 되지만 승부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 절대로. 그런데 7월 27일 경기처럼 홈런을, 그것도 끝내기 홈런을 치면 지켜보는 팬들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박병호 선수는 지난겨울 FA 계약으로 KT 위즈 선수가 되었다. 그때 히어로즈 팬들의 심정은 아마 하늘이 무너진 듯했으리라. 팬들은 그를 히어로즈의 역사이자 심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팀을 떠났다. 여러 정황으로 짐작해보자면 구단은 그와 FA 협상 테이블조차 차리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슬픔, 안타까움, 분노, 좌절 등등 오만가지 감정이 요동쳤다. 발표된 FA 계약금액은 나를 더 속상하게 했다. 100억이라는 숫자가 난무하는데 우리는 30억에도 팀의 레전드와 이별해야 하다니… 나는 이미 여름에 가장 좋아하는 서건창 선수의 트레이드라는 꽤 아픈 예방주사를 맞았는데도 마음이 쓰렸다. 어쩌랴. 그가 옮긴 팀에서 홈런왕의 명성을 되찾기를 기도나 해야지, 별수 있나 뭐.


팀을 옮긴 선수는 친정팀과 하는 첫 경기에서 응원단에게 인사를 한다. 팬들은 환호와 박수로 선수의 새 출발을 응원한다. 훈훈함은 딱 여기까지다. 친정팀이라고 봐주는 것 없고, 한솥밥을 먹었던 선수라는 이유로 살살하지 않는다. 지난 4월 30일 키움 히어로즈와 KT 위즈의 경기에서 낯선 풍경이 있었다. 두 팀의 2022 시즌 첫 시리즈 두 번째 경기였다. 그날 박병호 선수가 9회 초에 홈런을 쳤다. 그가 홈을 출발하여 1루, 2루와 3루 베이스를 돌고 홈으로 돌아오는 내내 1루 히어로즈 응원단은 ‘박병호’ 선수 이름을 연호했다. 상대팀 선수의 홈런에 야구장이 떠나가도록 환호하는 경우가 있었나. 나는 처음 본다.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은 찰나에 지나가고 박뱅이니까 해도 된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에는 울컥했다. 솔직히 말해서 지난 2년 그는 매우 부진했다. 우리가 알던 박뱅이 아니었다. 에이징 커브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고 공갈포라는 비아냥도 들렸다. 그랬던 그의 홈런에 우리가 흥분하고 기뻐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지금 홈런 1위를 달리고 있다.


어쨌거나 상대팀 선수인데 박병호 선수의 홈런에 환호하는 응원단의 모습을 보고 , 히어로즈 선수들이 당황하고 섭섭해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팬들이 이 정도로 박병호 선수를 사랑하는지 너희들은 몰랐나, 구단은 어떤 선수를 내보냈는지 반성하라는 심보가 있었다. 별 걸 다 섭섭해한다고 무시했다. 그 후로도 그의 홈런 소식을 들으면 기분이 그냥 좋았다. 단일 시즌 50개 홈런을 또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설렌다.

하지만 7월 27일 끝내기 홈런을 보고 알았다. 박병호 선수의 홈런이 항상 기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 이긴 경기를 그의 홈런 한방에 놓쳤다고 생각하니 분했다. 홈런을 치려면 중간에 치던가. 승부에 상관없이 치던가. 그래야지 말이야. 그가 홈런을 치면 마냥 기쁘고 축하의 박수가 저절로 나오고 그랬는데 아니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 없다는 말이 이 경우에도 해당하는 건가. 나는 박병호 선수가 너무너무 좋은데 막상 히어로즈를 이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니 얄밉다. 꼭 그래야만 했나?


8월 3일 NC 다이노스와 경기에서 그가 연타석 쓰리런 홈런을 쳤다. 그 어려운 걸 그가 했다. 며칠 전 느꼈던 얄미운 감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기분이 좋다. 바로 이거다. 홈런은 다른 팀 경기에서만 쳐야 한다. 히어로즈와 경기할 때는 홈런 금지이다. 제발. 박뱅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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