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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Sep 16. 2022

‘비와 음악’ 안에 나 있다

2022 썸데이페스티벌 - 난생처음 우중페스티벌 다녀옴

우중페스티벌 가 본 적 있어? 없지? 비를 맞으며 빗 속에서 음악과 함께 하는 기분이 어떤지 얘기해 줄까? 부슬부슬 이슬비였다면 내가 말을 안 해. 비옷을 입고 있었는데도 홀딱 젖었어. 싸이의 흠뻑쇼나 워터밤 페스티벌과 별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아닌데. 많이 다를 것 같은데? 궁금하지? 내가 우중페스티벌의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해줄게. 들어봐.


썸데이페스티벌이라고, 매년 늦여름에 열리는 음악 축제가 있어. 올해는 난지 한강공원에서 9월 3일과 4일에 열렸는데 페스티벌 일주일 전부터 태풍예보가 있었지. 힌남노… 2003년 매미와 비슷하거나 더 세다는 태풍이야기로 방송과 신문이 시끌시끌했잖아. 나는 페스티벌이 취소되었으면 했어. 그때까지만 해도 이슬비도 맞기 싫거든. 너도 알다시피 공연이 가까워지면 취소수수료가 어마어마하잖아? 게다가 나는 티켓을 우편배송으로 받는 바람에 취소가 쉽지 않았어. 그래서 주최 측이 취소해주길 은근히 기대했는데 끝내 안 하더군. 태풍 상륙이 페스티벌이 끝난 다음날로 예보되어 있기도 했고 잘하면 태풍 경로가 바뀔 수도 있으니까, 뭐.

우천 시 매뉴얼에는 시간당 10mm 이상 혹은  1일 50mm 이상 강수량이어야 취소한다고 되어 있더라. 어느 정도인지 감이 와? 잘 모르겠지?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까 시간당 10mm의 강수량으로 비가 오면 비옷을 입고 있어도 옷이 젖고 물웅덩이가 제법 크게 생긴대. 프로야구는 경기를 일단 시작하면 웬만한 비에도 경기를 계속하잖아. 그런 프로야구가 경기 중지를 고민하는 시점이래. 이제 어느 정도인지 느낌 오지?


암튼 지간 페스티벌은 취소되지 않았고 친구들과 나는 비 내리는 난지도로 갔어. 가족들은 태풍이 올라오고 있는데 안 갔으면 했지만 나는 티켓값이 너무 아까웠어. 내가 뭐 날이면 날마다 콘서트를 보러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냥 갔지. 우리가 쫌 무대뽀로 보일 수도 있겠다. 크크크. 잔디밭에 돗자리 펴놓고 밥 먹기는 힘들 것 같아 당산역 근처 식당에서 든든하게 점심을 먹었어. 밥을 먹으며, 셔틀버스를 타고 가며 야외에서 하는 공연은 다음부터 절대로 오지 말자고 궁시렁궁시렁거렸어. 그런데 말이야. 공원이 가까워지고 음악이 들리면서 심장이 쿵쾅쿵쾅 대지 뭐야.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신나더라. 아 맞다. 참 우리 같은 무대뽀들 많더라. 대따 대따 많았어.


스테이지는 2개 있었는데 우리가 원하는 선우정아, 카더가든, 이승윤, 셉센치의 공연이 모두 동일한 스테이지에 있어 얼마나 다행이던지. 비도 추적추적 내리는데, 설령 비가 오지 않았다고 해도 스테이지 옮겨 다니는 것은 귀찮아서 못할 것 같아. 그지? 아니라고? 좋아하는 가수 보려면 그 정도 수고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론 그렇지만 말이야. 나의 원픽은 이승윤의 공연이었는데, 나라면 처음부터 그가 공연할 스테이지에 자리 잡고 꼼짝 안 했을 것 같아. 다른 스테이지에 박효신의 공연이 있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그러면 옮겨 다녀야지. 당연하잖아. 푸하하하하.


일단 피크닉존에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깔았어. 비 오는데 돗자리가 필요할까 싶어 가져갈지 말지를 엄청 고민했는데 잘 가져간 것 같아. 돗자리에 오래 앉아있지 못했지만 베이스캠프 역할을 톡톡히 했어. 주로 가방 덭개로 사용했지만 말이야.  종이로 된 등받이 의자를 가져온 사람들이 꽤 있었어. 처음에는 부러웠는데 잠시였어. 비에 젖으니까 애물단지도 그런 애물단지가 없더라고.


선우정아의 공연 때 비가 잠시 그쳤고 그 후로는 비가 점점 더 많이 왔지만 공연을 즐기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어. 신기하게도 그랬어. 비옷을 입었나 싶을 정도로 엉덩이 빼고 홀딱 젖었어. 윤하 공연 때 돗자리에 앉아있던 친구들은 엉덩이도 젖었어. 갑자기 폭우가내렸거든. 순식간에 돗자리 위에 빗물이 고였다나. 나는 무대 근처에 있어 몰랐는데 친구들 말로는 빗소리에 음악이 묻혀 노래가 잘 들리지 않았대. 가수 윤하도 안절부절못했던 기억이 나네. 본인 잘못도 아닌데 엄청 미안해하더라고.

짜잔~ 드디어 내가 고대하던 이승윤의 공연시간이야. 빗줄기는 점점 거세졌지만 신나게 놀았어. 점프도 하고 떼창도 하고 함성도 지르면서 말이야. 점프를 할 때마다 물웅덩이에 뛰어드는 기분이야. 첨벙첨벙. 신발도 양말도 다 젖고.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았어. 하하하하. 자동차 운전할 때 비가 쏟아지듯 내리면 윈도 브러시도 별 소용없는 것 알지? 안경을 닦아도 닦아도 앞이 보이지 않아. 오죽하면 가수 이승윤도 비에게 오지마라고 화를 한 번 내자고 했을까. 그의 노래 - 영웅 수집가, 가짜 꿈, 들려주고 싶었던, 시적 허용, 도킹, 허튼소리, 빗속에서. 우주 like something to drink , 흩어진 꿈을 모아서, 날아가자 - 다 좋았어. 그의 엔딩곡 ‘날아가자’의 노랫말처럼  날아올라 물안개위를 살포시 걷는 것 같았어. 비와  음악 속에서 서로 만났는데 좋지 않을 리가 없잖아. 아~ 정말이지 너무너무 좋았어.


신나게 놀고 났더니 어느덧 마지막 공연이 되었어. 가수 이승윤의 공연이 끝나고 서로의 모습을 보며 웃다가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어. 택시기사가  승차거부를 해도 어쩔 수 없겠다 싶은 그런 몰골이었어. 손가락도 쪼글쪼글. 다시 생각해도 웃겨. 크크크. 가수 십센치는 우리 모두의 공동픽이었는데, 누구 하나 반대하지 않고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집으로 돌아왔어. 다행히도 승차거부는 없었어.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겠다. 감사합니다. 집에 돌아오니 뱃속에서 난리가 났어. 점심 이후에 먹은 게 없지 뭐야. 폭우에 뭘 먹을 수 있었겠어? 라면 한 그릇 뜨뜻하게 끓여먹었지. 이렇게 맛있는 라면은 오랜만이야.


어때? 우중페스티벌 재미있지? 에험 누구나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군대 다녀온 남자들이 틈만 나면 군대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도 우중페스티벌 얘기를 질리도록 할 것 같아. 솔직히 질릴 것 같지도 않아. 이슬비만 내려도 , 소나기 오면 소나기 온다고, 봄비는 봄비대로,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내려도, 가뭄에 비를 기다릴 때도 생각날 것 같아. 다음날 힌남노가 몰고 온 세찬 비바람을 보니 내가 쫌 무모했구나 싶기도 하고, 사고가 없어 다행이구나 싶고, 그런데 생각할수록 재미있어. 오래오래 기억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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