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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Jan 16. 2023

귀농도 귀촌도 아니고 이사입니다



오늘 아침 거름 냄새가 났다.


이사 오고 한 달 동안 한 번도 맡지 못한 냄새다. 왜 갑자기 시큼털털한 냄새가 나는 걸까. 그동안 눈이 다섯 번이나 내렸고 내내 추웠는데 며칠 전부터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꽁꽁 얼어 삽이 들어갈 틈도 주지 않던 땅이 녹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동네 사람들이 농사 준비를 하나? 그래서 거름 냄새가 나나. 아직 1월인데, 설날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왜 시골이야? 살기 편한 도시를 떠나는 이유가 뭐야?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거야? 농사짓는 건가? 농사를 안 짓는다고? 그렇다면 더더욱 왜 시골이야?’

시골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전하면 모두가 어김없이 묻는다. 남편도 나도 농사는 지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고 잘할 자신도 없다. 시골로 이사 왔지만 언감생심 농사를 지을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고 앞으로도 안 할 것 같다. 남편은 텃밭농사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는 우리 가족이 먹을 푸성귀정도는 가꾸고 싶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나는 이름표가 없으면 잡초와 나물을 구분 못하는 인간이라 영 자신이 없다.


귀농이  아니라고 하니 펜션을 운영할 계획인지 묻는 친구가 있었다. 펜션이라니? 사람들 북적이는 것을 피해서 왔는데 펜션은 무슨 펜션이란 말인가. 젊은 나이에 시골로 기어 들어가서  도대체 뭘 해 먹고살지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묻는다. 나이 60이 다 되어가는 마당에 젊다는 말을 들었다. 새집 지어 멋지게 이사 왔는데 굳이 기어들어왔다고 한다. 친척 어른들도 친구도 지인도 심지어 나도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며 살지 궁금하다.


“시골로 가자.”

처음엔 시골이 아니었다.  손바닥보다 작더라도 마당 있는 집에 살아야지 했다. 특히 남편이 그랬다. 남편은 지난 몇 년 동안 불면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밥을 잘 먹지 못했다. 아픈 원인은 알 수 없는데 복용해야 하는 약이 늘어났다. 힘들고 지치면  사람들은 자연과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건가. 다른 사람들도 그런가. 암튼 지간 남편은 아파트를 점점 답답해했고 우리는 마당 있는 집을 찾아 나섰다. 서울의 직장으로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에 우리 집은 없었다. 우리가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집들이 서울에서 점점 멀어졌다. 시골로 가야 하나?


아직 공부를 마치지 못한 아이들은 어떡하지? 서울이나 수도권에 있는 본가는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좋은 스펙 중의 하나라는 말이 있던데, 졸업하고 취업하고 자리 잡을 때까지 옆에서 도와줘야 한다는데 부모가 시골로 옮겨도 되는 건가. 우리 부부의 노후도 걱정이다. 아직은 도시에 남아 돈을 더 벌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하지만 계속 이렇게 살면 점점 불행해질 것 같다는 남편을 , 가족의 평안을 위해 더 참으라고 할 수 없었다. 시골로 가기로 했다.


남편은 일을 줄였다. 일을 줄인 만큼 수입도 상당히 줄었다. 완전히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아이들 걱정은 그만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스무 살이 되면 스스로 살아야 한다고 틈만 나면 주입시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스무 살을 넘긴 지가 언제인데 내가 말만 그리 했구나 싶다. 아이들은 내 걱정과 달리 더 잘 지낼 것 같다. 나는 전업주부이고 집순이 기질이 강하니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별 차이 없지 않을까. 그렇게 시골로 왔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귀농도 아니고 귀촌도 아니다. 그냥 여유 있고 평화롭게 살고 싶어 이사 왔다.


#브라보문경라이프?? #문경일기 #2023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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