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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Jan 12. 2023

방금 시골로 이사했습니다

#브라보문경라이프?? #문경일기 #20221216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2022년 12월 , 20년 넘게 살았던 과천을 떠나 문경으로 이사 왔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왔다. 과천은 서울 강남을 코앞에 두고 있는 행정도시이고 남편의 고향 문경은 경상북도 북부의 시골이다. 나는 슈퍼울트라 초강력 집순이다. 그래서 과천에 살든 문경에 살든 별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별다르지 않기는 개뿔, 많이 다르다.


이삿날 저녁 6시쯤 문경에 도착했다. 도로도 마을도 칠흑 같아서 우선 놀랐고, 놀라고 낯선 기분이 가시기도 전에 무서웠다. 깜깜해도 너무 깜깜하다. 밤에 돌아다닐 일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 괜찮으려나. 문경의 밤 6시는 과천의 저녁 9시와 느낌이 비슷하다.


우리 동네는 시내버스가 하루 4번 운행한다고 한다.  내가 아무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집순이라도 그렇지 말이다. 집에 있고 싶어 집에 머무는 것과 밖으로 나가는 것이 힘들어 집에 있어야 하는 것은 천양지차이다. 외출할 때마다 번번이 남편과 함께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생각할수록 답답하다. 어른들은 웬만하면 자신의 차를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웃사촌 시누이집만 해도 가족수만큼 차를 가지고 있다. 문경시내 주차장이 서울 도심만큼 혼잡한 이유를 알겠다. BMW(Bus Metro Walk)를 애용하는, 나름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고 있는 뚜벅이 인생을 청산해야 하나. 정녕 그런가. 나는 운전하기 싫은데 어떡하노.


이사하고 사흘째 되던 날 경찰관 2명이 왔다. 완공검사도 받지 않은 집에서 오폐수를 마구마구 내보낸다고 혼내러 왔나? 새로 구입한 가전제품과 가구를 싣고 온 트럭들이 동네 길을 막고 있어 교통정리 하러 왔나? 오 마이갓. 순찰 중인 경찰들이었다. 집 앞에서 눈이 마주쳐 인사를 했더니 공사하는 동안 내내 궁금했다고 하셨다. 느닷없이 상상한 적도 없고 계획에도 없던 하우스투어 가이드를 했다. 투어를 마치고 티타임도 가졌다. 경찰관외에도 몇몇 동네 어르신들이 다녀갔다. 있는 듯 없는 듯 지내고 싶다. 동네어른들은 차치하고도 문경은 남편의 고향이자 나의 시월드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지낼 수 있을 리가.


시골로 이사 오면서 가장 많이 상상한 것은 산책이다. 논두렁 밭두렁은 걷지 못하더라도 계절의 변화를 만끾하며 시골길을 타박타박 걷는 그림을 예쁘게 그렸었다. 이사 오자마자 동네 큰길을 따라 걸었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동네 개들이 짖는다. 묶여 있다는 것을 알아도 몸이 움츠려든다. 흡사 돌림노래처럼 걸음마다 한 마리씩 짖기 시작하더니 종내는 합창을 한다. 으아아아악~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되돌아왔다. 고백하자면 나는 개가 두렵다. 어렸을 때 유치원 가는 길에 지나쳐야 했던 개 때문에 유치원을 끝까지 다니지 못했으니 뭐. 지금도 길에서 강아지를 만나면 떨린다.  내 몸피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강아지 앞에서 모양 빠지지만 어쩌겠나. 몸이 자동으로 반사하는 걸 말이다. 시골 동네는 개 짖는 소리를 듣지 않고는 걸을 수 없다. 으으으윽. 산책하러 자연휴양림이나 문경새재로 가야 할 판이다. 그러면 산책길을 찾아 헤매던 도시와 다른 게 없잖은가. 이게 뭐야.


도시생활에 익숙해진 몸과 마음이 투덜투덜거린다. 왜 시골로 왔어? 농사지을 계획도 없다면서? 지금껏 도서관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살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야구장 가려면 1박 2일은 잡아야겠더라. 자꾸만 마음이 어수선하다.


지난밤에 눈이 내렸다. 빗자루를 챙겨 들고 눈을 싹싹싹 쓸었다. 땀이 조금 났고 하안 풍경에 마음이 포근해졌다. 적당한 운동은 상당한 허기를 불렀다. 남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었다. 최근 몇 년간 불면에 시달리고 만성위염과 역류성식도염으로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던 남편은 요즘 꿀잠을 자고 밥을 예전보다 잘 먹는다. 밥을 먹던 남편이 웃는다.


“우와, 지금 우리 1시간 동안 밥을 먹고 있네? 이렇게 살면 엄청 건강해질 것 같아. 안 그래?”

“나도 두통이 없어진 것 같아.”


그래 뭐, 어수선하고 심란한 마음은 방금 이사 와서 적응하느라 그런 거리라. 시골에서 잘 살자. 아자아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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